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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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서른 다섯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6-27 17:53


개성에서 외할머니가 올라오셔서 나는 15년 만에 다시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저녁은 잔칫집같이 들떠 있었다. 몇 달 전 시집간 동생 현옥이도 일찍 퇴근하여 일을 거드느라 부산을 떨었다. 어머니도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차렸다.



“우리 집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구나.”



우리들은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밤이 늦은 줄도 모르고 모여앉아 있었다. 새벽 1시나 되어 잠자리에 들려고 내 이불과 할머니 이불을 한방에 펴는데 누가 우리 집 문을 마구 두드렸다. 밤늦게 무엇에 쫓기듯 두드려대는 소리에 식구들은 모두 놀랐다. 어머니와 현수가 나가 손님을 만났다. 그들은 잠시 수군거리더니 옆방으로 들어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방밖으로 간간히 세어나오는 어머니 울음소리에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나오시더니 현옥이 손을 잡고 계속해서 우신다. 현옥이는 영문을 몰라 눈이 휘둥그래져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현옥아, 이게 무슨 일이냐.”

어머니는 입을 떼려다 다시 울고 다시 울고 하시다가 더듬더듬 말을 꺼내었다.



“놀라지 마라 ....네 남편이...네 남편이 어제 오후에 창광원에서 목욕하다가 과로로 죽었단다.”



현옥이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였고 우리 식구 모두도 큰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현옥이 신랑은 외국인을 안내하는 직업에 복무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너무 피곤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현옥이는 몸조심하라고 걱정을 했었는데 결국 변을 당한 것이다. 현옥이 남편은 외국인을 안내하여 창광원에서 그들과 함께 수영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집은 밤새도록 초상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옥이는 결혼한 지 다섯 달 밖에 되지 않았으니 새파란 생과부가 된 셈이었다. 다음 날 새벽, 초대소로 돌아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상봉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웃음을 잃고 지냈다. 늘 가족 소식이 궁금했지만 중국에 다니러 가고 어쩌고 하느라고 집에 가볼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급작스럽게 임무를 받고 평양을 떠나왔다. 평양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집에 다녀왔더라면 후회가 없었을 것 같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울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허리에 안전띠를 매어 주었다. 곧 착륙한다는 신호였다.



“서울은 바깥 날씨가 쌀쌀해요. ”



여자가 자기의 반외투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 주었다. 바레인에서 걸치고 왔던 국방색 경찰 뜨개 옷은 여자 수사관이 들었다.



‘노래를 불러야지. 이제부터는 죽는 순간까지 노래를 부르리라.’



나는 ‘유격대 행진곡’을 부르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입만 벌리면 줄줄 쏟아지던 노래였는데 캄캄하게 막혀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결국 노래는 부르지 못하고 ‘이놈들 해볼테면 해보라지. 어디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 하는 말을 속으로 되뇌이며 허물어져 내리려는 내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비행기가 덜컹 소리를 내며 착지하여 땅 위를 달리더니 멈추어 섰다. 비행기가 멎는 것과 동시에 내 심장도 함께 멎는 것 같았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치는 것으로 봐서 비행기 문이 열린 모양이었다. 특무들이 짐정리를 하느라고 기내가 약간 소란스러웠다.



‘내가 드디어 서울에 왔구나’



서울. 말로만 듣던 서울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착잡하기만 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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