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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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가족

북한 동포들의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4-03-25 20:15


: , 이번에는 북한 동포들의 사연을 보내드리는 시간입니다.

: , 오늘 첫 번째 사연은 반동분자의 친척이란 이유로 일가족이 큰 고통을 당한 최순녀 동무의 가족사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 아버지가 수용소에 끌려가고 남은 가족마저도 반동으로 사람들의 저주를 받으며 살았다는 한 맺힌 사연, 지금 들어보시겠습니다.

    

원래 우리 집안은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상류층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6.25전쟁 직후중앙 권력기관에서 근무했고, 또 부수상이였던 최창익은 우리 할아버지와 6촌간이었다고 한다. 19568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강하게 비판하고 당의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했다가 종파분자로 락인돼 숙청된 최창익이라면, 아마 나이 많으신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일제시기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광복 후 평양으로 들어와 조선 창건에 참여한 최창익은, 경제학과 력사학을 공부한 유명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항일운동을 하고 유명한 학자면 뭘하랴! “종파분자최창익과 더불어 우리 가족은 물론 온 최씨 가문이 멸족을 당했다. 당시 최창익을 비롯해 윤공흠, 김강, 리필규, 서휘 등 연안파와 박창옥 등 일부 쏘련파 인사들은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판했다가 된서리를 맞고 중국으로 망명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8월 종파사건'은 조선 최고의 반체제사건으로 조선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건이다. 바로 이 엄청난 사건에 련좌되여 우리 가족도 화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아버지가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 것도 7촌벌 되는 최창익의 숙청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도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15살이였다.

그래도 어머니의 좋은 출신성분 덕에 난 다행히 수용소 행을 면할 수 있었단다. 아버지가 끌려가게 되자 어머니는 강제 이혼을 당했고 나도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남동생도 어머니 배속에 있었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둘째 삼촌의 가족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수용소에 끌려갔다. 워낙에 출신성분 나빴던 숙모는 아예 강제이혼도 적용 시키지 않았다. 아무튼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4형제와 그 가족들을 다 꼽아보니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만 18명에 이른다. 최창익의 7촌 조카의 가족이 이 정도니 그 직계가족들의 운명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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