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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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네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4-13 18:39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하루는 내가 폭파시킨 남조선 려객기에 우리 가족들과 나, 김승일이 타고 있었다. 내가 우물쭈물 망설이자 김승일은 내게 시한폭탄 라지오를 빨리 비행기 선반 위에 올려놓고 내리자고 재촉했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 김 선생의 얼굴은 죽어 있는 사람이었다. 무섭게 굳어 있으면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표정이었다.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고 얼굴 색깔은 푸르댕댕한 색깔이었다. 내가 우리 식구들에게 ‘어서 이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말을 하려 하자 죽은 것 같던 김승일이 내 팔을 와락 잡아 나를 비행기에서 끌어 내렸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안 돼요. 우리 엄마, 아버지가 저기 있어요. 현옥아, 현수야!’



나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동생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김선생은 내 발버둥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처럼 나를 잡아 눌렀다. 나는 그의 팔 힘에 꼼짝없이 비행기에서 끌려 내려오면서 엄마, 아버지, 동생들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마유미, 마유미! 정신차려요.”



간호원들은 영어로 혹은 바레인 말로 나를 악몽에서 깨어나게 도와주기도 여러 번이었다.



또 이런 꿈도 꾸었다. 엄마,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맨발로 눈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나와 딱 마주쳤는데도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나를 원쑤보듯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섭섭해서 식구들을 뒤쫓아가려 했다. 그때 외할머니가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무당이 되어 나를 눕혀 놓고 커다란 칼로 내리치려 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채 입에서는 불을 뿜고 있었다. 마침 지난 봄(87년 5월)에 피부암으로 죽은 막내 동생 범수가 내 손을 끌어 주어 우리는 날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땅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달렸다. 비행기처럼 빠르게 달리다가 범수가 갑자기 잡았던 손을 놓아 버린다. 나는 어디론지 끝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데 간이 써늘하고 오금이 저려 비명을 질렀다. 역시 간호사가 나를 흔들어 깨워준다. 수건으로 이마와 가슴에 흐른 땀을 닦아 주었다.



얼마 동안을 눈만 감으면 악몽에 시달리고 깨어 있으면 육체적인 통증에 시달리면서 보냈다.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워낙 건강하고 젊었던 탓인지 나날이 회복되어 갔다. 몸이 조금 회복되자 예상했던 대로 바레인 경찰이 와서 지문을 찍어 가고 사진도 박아 갔다.



병원으로 옮겨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날짜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아주 기나긴 시간이 흐른 것도 같고 며칠 안 된 시간인 것도 같았다. 크고 부드러운 눈을 가진 30대의 흑인 간호사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고 머리도 벗겨 주었다. 어디에서도 그런 따뜻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녀의 그런 행동을 있는 그대로 감동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따뜻하다, 고맙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속에 숨겨진 저의를 알고 싶어 했고 그녀의 친절을 의심했다. 흑인 간호사는 교대할 시간이 되면 내 손을 꼭 잡고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마유미, 나중에 만나. 우리는 친구야.”



속삭이듯 귓가에 들려주는 그녀의 영어는 가슴을 촉촉이 적셨고 언니 같다는 마음도 들게 했다. 난 뭐라 대답할 수도 없어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 흑인 간호사가 나가고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여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죽어야 한다는 생각,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 등으로 심란하고 우울해 있는데 남자들 몇 명이 경찰의 안내를 받고 내 병실로 들어섰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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