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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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세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4-12 18:29


나 혼자만 살아나 적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생각하니 그저 암담할 뿐이었다. 나는 누군지 모를 어떤 분을 향해 죽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정성을 다해 간절히 빌었다.



‘아, 나의 짧은 인생, 여기에서 막을 내리는구나. 제발 고통 없이 죽어지는 행복이라도 마지막으로 베풀어 주시기를.......’



내가 그때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께 기도를 했겠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김일성만이 우리의 구원의 빛이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한 신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수령님, 제게 힘을 주십시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이상스러웠다. 단 하루도 ‘위대한 수령 아버지’라는 말을 잊어본 적이 없는데도 그런 순간에는 그 말이 튀어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내 곁에는 흰 위생복에 모자를 쓴 간호사와 사복을 입은 여자가 밤낮으로 교대해 가며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지시가 있었는지 그들의 감시는 철두철미했으며 조그만 틈바구니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더구나 나를 살려내기 위한 보살핌은 의무감이라고만 생각해 버리기에는 심할 만큼 지극 정성이었다.



간호사 중에는 바레인 여자뿐 아니라 돈벌이를 하러 필리핀에서 온 여자도 있었는데 그들의 병 간호는 어느 쪽 사람이든 매한가지로 열심이었다.



내가 눈을 감은 채 오랫동안 눈을 뜨지 않거나 정신을 잠깐씩 잃으면 나를 흔들어대며 “마유미! 마유미!”하고 목이 쉬도록 이름을 불러 정신이 들도록 열심을 다했다. 내가 깨어나 눈을 뜨면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반색을 했다. 부모형제도 꺼려 할 대소변까지 마다 않고 다 받아냈다. 먹은 것이 없어 대변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들이 나를 살려내려는 이유와 목적을 생각하면 그들의 친절과 정성이 넘칠수록 그들이 미웠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내가 저지른 범죄를 내 입을 통해 확인시키기 위해 나를 살려내려고 발버둥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들의 간병은 나를 내심 감동시키고 있었다.



‘나를 살려내라는 상부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저러겠지!’, ‘살려내서 자백을 받자는 거야!’



감동되는 마음을 막아내기 위해 그런 생각들을 해보았지만 그들이 나를 대하는 그 순간순간만은 단지 한 인간의 생명을 살리려는 순수하고 헌신적인 마음가짐이 있음을 엿보았다. 나는 모질고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냉정하게 이성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 그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부정적으로만 여기고 감사할 줄 몰랐던 내 비뚤어진 심성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변변하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보면 글에서나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정신을 잃는 횟수도 줄어들고 몸은 어느 정도 회복 될 기미를 보였다. 정신이 들면서부터 온몸 어느 한군데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디마디가 다 쑤시고 특히 무릎의 통증은 몸을 약간만 움직이려 해도 “아”하는 비명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심했다. 입안과 그 언저리는 헐고 깨물었던 혀는 침을 삼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부어 올라 쓰라렸다. 목숨은 살아났지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죽은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다.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꿈에서 엄마, 아버지 그리고 동생들이 내가 폭파시킨 남조선 려객기에 함께 타고 있었다. 내가 우물쭈물 망설이자 김승일은 내게 시한폭탄 라지오를 빨리 비행기 선반 위에 올려놓고 내리자고 나를 재촉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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