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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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두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4-11 18:51


정신이 차츰 깨어나면서 나는 살아 있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별별 생각을 다 해보고 별 궁리를 다 짜내어 죽을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온몸이 꽁꽁 묶여 있어 꼼짝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죽었으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 텐데 이런 저런 고민이 들었다.



평양을 출발한 후 공작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나 죄책감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민족적 사명인 조국통일을 위해 내가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하면 당장 영웅이 된 기분이었다.



‘나 하나 죽으면 그만큼 조국통일이 빨라진다. 그깟 목숨 이래도 한번 죽고 저래도 한번 죽는데 조국을 위해서 죽는 것이 백번 낫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 하나 죽는다는 문제만 생각했지 비행기나 그 속에 타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그것은 나의 공작 임무일 뿐 누구의 아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 하는 식의 사람의 개념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붙잡힌 몸이 되고 보니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죽였다는 생각이 앞섰고 단지 내가 해야 할 당연한 임무였을 뿐이라는 당당한 마음이 들지를 않았다.



‘어떻게 하면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완전한 길은 죽는 길밖에 없는데 어떻게 죽나?’



차츰 정신이 맑아지자 나는 귀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병실 안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내가 의식을 회복하고 몸을 뒤척이는 기색을 보고 경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She is good.” “He died.”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김 선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런 고민 없이 먼저 간 김 선생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고, 나 혼자만 살아나 적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생각하니 그저 암담할 뿐이었다. 늘 함께 행동하다가 이제 나 혼자 남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심한 외로움마저 느껴졌다. 이 엄청난 사태를 나같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감당해 나가라는 말인가. 몸이 약해서 항상 비칠거리던 김 선생이 그렇게도 든든하고 소중한 존재였는지 새삼 깨달으며 지혜를 있는 대로 쥐어짜보았다. 도저히 대책은 서지 않고 두려울 따름이었다. 김 선생마저도 없는 이 마당에 버틸 힘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의지할 사람마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막내 동생 범수가 죽던 해, 휴가를 받아 집에 갔더니 어머니는 동생 병구완에 얼굴이 반쪽이 되고 폭삭 늙어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귓속말로 ‘어찌나 답답한지 남몰래 랭수를 떠 놓고 천지신명께 우리 범수 병 좀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미신이나 종교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조선에서 그같은 행동은 대단한 용기가 없으면 하기 어렵다. 자식을 살려보려는 모성애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천지신명을 찾은 것이었다.



나는 이 생각이 문득 떠올라 ‘천지신명이 계시다면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 숨통이 지금 이 순간 딱 멈추어질 수만 있다면......’이라고 빌었다.



나는 누군지 모를 어떤 분을 향해 있는 정성을 다해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절박한 순간에도 식구들의 얼굴은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고 식구들 걱정이 되었다. 내가 비밀을 지키지 못하면 내 조국에도 먹칠을 하지만 내 가족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걱정이었다. 이를 악물고 참으려 해도 눈물은 자꾸만 흘러내려 침대를 적셨다.



무서운 승냥이 떼들이 들끓는 무인도에 혼자 떨어졌으니 곧 내 온몸은 할퀴어지고 갈갈이 찢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땅으로 꺼질 수도 하늘로 솟아올라 사라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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