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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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다섯 번째 편지-공부

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11-01 18:07

 

분희언니

그땐 잘 들어갔어요? 날씨도 좋고, 분위기 좋은 데서 언니랑 밥 먹고 묵혔던 수다도 실컷 떠니까 좋더라구요. 멀어도 담에 또 사무실 근처로 놀러오세요. 그리고 언니 얼굴 좋아보이니까 더 기분 좋더라.

영어공부 한다더니 잘 되요? 언니도 참 대단해요. 사실 영어도 용기가 필요한 거 잖아요. 어쨌든 결심을 하셨다니 열심히 하세요! 한국에선 영어가 필수이긴 하죠. 요새는 인터넷으로 외국사이트에 들어가서 물건 주문도 하고, 또 해외여행 할일도 자주 생기잖아요. 제 주변에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엄마들이 영어공부를 많이 해요. 엄마도 알아야 가르치니까.

저도 육아휴직 할 때 영어공부 좀 해둬야지 했는데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얄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마침 엄마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사이트에서 영어공부 같이할 사람을 찾는 글을 봤어요. 집단전화를 걸어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영어로 하자는 건데 집에서 서로 편한 시간에 할 수 있어서 무작정 시작 했어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인터넷전화를 이용하면 여러명이서 통화를 할 수 있거든요.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수차례 통화를 하면서 들어보니 다들 사연이 있었어요.
무슨 시험준비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아이들 영어동화 잘 읽어주려고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조만간 남편이 해외 출장 가는데 따라가려고 한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해외여행을 계획한 사람도 있었고요.

다들 나랑 처지가 비슷한 애엄마 들이라 말도 잘 통해서 참 좋았는데.... 아쉬운 건 한 두달지나니까 전화통화 도중에 애기가 운다. 기저귀 갈아줘야한다. 하는 통에 오래가진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생각은 좋았는데 좀 무모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그때 알게 된 한 명 하고는 꾸준히 연락을 했는데, 그렇게라도 쉬운 영어 써가면서 이야기하고 새로 인간관계도 생기니까 나름대로 재밌었어요. 그 친구가 남편 따라 미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영어공부는 거기서 끝나긴 했지만, 어쨌든 그게 저를 자극하는 계기가 됐던 거 같아요.

막상 결혼, 출산, 육아가 이어지다보니 나를 위한 투자를 거의 안하게 됐거든요.

애들 좀 더 키워놓고 해야지 했다가는 벌써 마흔 넘어서 쉰 되면 그땐 머리가 굳어져버리잖아요.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난 뒤에 든 생각이, 시간이 없다 핑계대지 말고 없는 시간 쪼개서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해야겠단 거에요.

그리고 알고 보니까 결혼한 여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정말 많더라구요. 그리고 더 놀란건 교육을 받으러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거에요. 다들 뭔가 배우기도하고, 자격증도 준비하고, 취업기회도 찾고 있더라구요.
암튼 언니, 영어공부 열심히 하시고요, 그래도 답장은 써주실거죠? 하하. 오늘은 이만쓸께요.
잘 지내요.
지우가

지우에게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쓰려니까 왜서인지 중국에서 만났던 네 모습이 떠오르네. 그때 넌 짧은 짐바 옷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척하니 끼고 있었잖아. 내 모습하고는 너무 달라서 어색했었는데...

지난주에 만난 너는 운동화에 흰 자켓를 입은 편한 모습이, 엄마가 된 내 모습과 비슷해서 맘이 얼마나 편했는지 몰라. 지우야. 정말 반가웠어… 음식도 맛있었고,

식당에서 내가 자꾸 여기저기 둘러봐서 당황하진 않았니? 벽마다 써있는 글이 영어여서 그걸 좀 읽어보느라고... 애를 썼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왜 그런 걸 써놨는지...
나 영어를 아예 모르거든… 그래서 요즘 영어학원에 다니긴 하지만 화가 날 때 많아. 젊은이들 속에 척~앉아 있으려니까 ‘내가 지금 노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공부는 하고 싶은데 진짜 창피하다.

때려치울까… 생각했는데 ‘피바다’가극이 생각나더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주인공 어머니가 왜 가,갸,거,겨를 배우기 시작하였는지 영화장면을 다시 생각했어… 

같은 마을에 사는 구장이 왜놈의 앞잡이였는데 읍으로 나가는 을남이 엄마에게 잘 갔다오라고 통행증을 주거든. 그런데 그 통행증 때문에 주인공은 검색에 걸려 수모와 고생을 당하게 되…
통행증에는 “이 년이 수상하니 잘 수색하시오” 라고 써있었는데, 이 글을 주인공은 까막눈 때문에 몰랐던 거야.
저녘에 집으로 돌아와 아들이 통행증 내용을 읽어주고서야 자기를 통탄하게 되였고, 글을 배우기 시작하거든… 글로써 세상을 알게 된 어머니는 피바다로 변하고 있는 고향을 구원하기 위해 혁명가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야…

지금 생각하니까 어쩌면 이 영화가 내 이야기가 된 것 같네…
영화의 주인공은 학교도 없어 모래판에서 글을 익혔는데 난, 이 좋은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다면… 후회해도 그건 내 탓이 아닐까? 자식을 두고 탈북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잊어버린다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분명 고향을 잊지 않았다면 꼭 영어를 배워야 된다… 이렇게 다짐하고 다시 공부시작하였어.

참, 네가 보낸 영어 동영상 잘 보았어. 근데 좀 더 쉬운 걸로 보내줘…. 난 그 동영상을 이해할 정도의 수준이 안되거든. 아마 네 여섯 살짜리 딸 수준보다 못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몇 달 후는 꼭 영어로 간단한 말을 할 수 있는 내 모습 보여준다… 그때까지 넌 나의 선생이야.

아 맞다. 너 북한인조고기밥 못 먹어봤지? 담에 만날 때는 내가 맛있게 해 줄께…
편지 잊지마…
언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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