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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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지하 조사실, 열 한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7-20 22:05


나는 부모님 이야기에 고개를 떨구고 잠시 울먹이다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놈들의 작간에 말려들면 안 된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 아닌가.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던 아버지의 말씀을 명심하자.’



집 떠나던 날 현옥이 남편의 죽음을 듣고도 그냥 집을 나서던 일이 자꾸만 나를 가슴 아프게 했지만 나는 목에 힘을 주어 얼굴을 쳐들면서 일본 말로 이야기를 꺼냈다. 바레인 경찰에게 주장했던 내용대로의 나의 지난 시절 이야기였다.



“중국 흑룡강성 오상시에서 태어나.......”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중이었지만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버지는 자결하고 어머니는 나를 버려둔 채 다른 남자에게 재가했다. 나는 그때부터 의지가지없는 떠돌이가 되어......”



그 다정하고 희생적인 어머니와 속이 깊으신 아버지가 있고 또 사랑스러운 동생들까지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공작원으로 선발되던 날은 1980년 3월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평소 말이 별로 없으시던 아버지는 집 떠나는 나에게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부디 몸조심 하거라’하고 당부했다. 나는 당시 18세의 어린 마음으로 중앙당에 소환되는 것만이 영광스러워 마음이 붕 떠 있었다. 여러 경쟁자를 물리치고 내가 그 영광을 차지했다는 자부심과 앞으로 펼쳐질 신비스러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버지의 말씀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도원과 같이 차에 오르면서 힐끗 돌아본 아버지의 표정은 침통했고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딸의 양양한 전도를 박수로 축하는 못해 주실망정 왜들 저러시나 하고 약간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때는 모르던 부모님의 뜻을 이제야 이해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수사관들은 손수건을 나에게 쥐어 주었다. 내 눈물은 지어낸 인물인 중국인 처녀의 뼈아프게 기구한 운명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너무 행복했던 시절과 사랑이 가득한 가족을 못 잊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삶의 여정이 너무나도 상반되는 가공의 인물과 실지의 나를 비교해 보면, 그리고 지금 처해진 나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듯이 저려 왔다.



내가 시무룩해 있자 수사관들은 과자와 음료수를 준비하여 나에게 권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새로운 물품을 볼 때마다 그 상표를 유심히 관찰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남조선에는 이렇게 좋은 물건이 있을 리 없는데 하고 살펴보면 과연 그 물건은 영어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름 자체도 ‘롯데’, ‘오리온’, ‘크라운’ 등 조선 말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 단어는 영어 단어였다. 외제를 들여와 한글 상표를 만들어 붙인 것이 틀림없었다.



오렌지단물 깡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가당’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뜻을 몰라 여자 수사관에게 손가락으로 그 글자를 찍어 가리키며 의미를 물어 보았다. 여자 수사관은 ‘No sugar’라고 영어로 알려 주었다. 오렌지단물에 사탕가루를 타지 않으면 시어서 어떻게 먹을까? 사탕가루가 워낙 비싸서 넣지 않은 모양이라고 내 나름대로 추측했다.



북에서 사탕가루는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아무리 고급 간부의 집에서도 사탕가루가 있으면 고이고이 모셔 놓았다가 귀한 손님이 오면 타서 내올 때나 쓴다. 또 배앓이 할 때 약으로 먹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사탕가루 사용이 지나쳐 당뇨병이 생긴다 하여 가능한 한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탕가루가 남아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낯이 뜨거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사탕가루가 들어 있지 않은 과일단물이 더 인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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