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2002년 서해교전의 진실 1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김정일은 남조선이 세계적인 행사를 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고 또 질투했다.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남조선 비행기에 대한 폭탄테로 사건을 벌린 일이나, 서울 올림픽을 릉가하겠다며 제13차 청년학생축전을 벌린 일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남조선에 대한 김정일의 렬등감은 북조선의 경제를 무너뜨렸고 국제적인 테로국가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같은 결과에서도 교훈을 찾지 못한 김정일은 2002년 남조선이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자 서해 앞바다에서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추적, 사건과 진실, 2002년 서해교전의 진실>



2002년 6월 29일, 국제적인 행사인 ‘세계축구선수권대회 폐막식’을 하루 앞둔 남조선은 몹시 들떠 있었습니다. 21세기의 첫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아세아에서는 처음으로 유치해 무사히 치렀다는 자부심과 함께, 우승 후보였던 이딸리아와 에스빠냐를 꺾고 처음으로 4강 진출을 이뤄냈기 때문입니다. 남조선 축구단이 4강에 진출하자, 남조선 사람들은 1966년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북조선이 이딸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이후 우리민족이 이룬 ‘기적’이라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16강, 8강, 4강 경기를 하는 동안 남조선 전역의 거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열렬히 응원을 벌렸습니다. 토이기와 3-4위를 가르는 경기가 있던 29일도 응원준비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었습니다.



축전의 분위기가 남조선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던 시간, 바다의 군사분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서해 해상경계선(NLL) 부근의 연평도 바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국가적인 행사 기간에 북조선의 무력도발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김정일은 남조선이 88년 올림픽을 유치하자 이를 방해하려고 남조선 비행기를 폭파시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전례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남조선 해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평소보다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꽃게잡이철인 6월에는 꽃게를 잡으려는 어선들이 연평도 부근의 바다에 몰려들기 때문에 남조선 해군은 북쪽에만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29일에도 날이 밝자 56척의 남조선 어선이 연평도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남조선 2함대 사령부는 고속정 3개 편대를 모두 출동시켜 꽃게잡이에 몰두한 어선들이 통제선을 벗어나는 것을 단속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편, 북조선 육도와 등산곶 앞바다에 떠있는 30여척의 북조선 어선을 주시했습니다.



오전 9시37분 남조선 2함대 사령부는 북조선 서해함대 산하 8전대 육도 기지에서 출항한 경비정 한 척을 탐지했습니다. 그 경비정은 37킬로미터 속력으로 남하하고 있었습니다. 북조선 경비정은 육도 앞바다와 해상경계선 사이에서 작업하고 있는 자기 어선들을 단속하기 위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경비정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남조선 2함대사령부는 고속정 1편대에 대응태세를 유지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9분 뒤인 9시46분 등산곶 기지에서도 북조선 경비정 한 척이 32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출항하는 것이 탐지됐습니다. 등산곶 앞바다부터 해상경계선 사이의 바다에서 북조선 어선 10여 척이 있었기 때문에 경비정은 이들 배를 관리하기 위해 나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조선 2함대 사령부는 육도 경비정과 마찬가지로 고속정 2편대에 등산곶 경비정의 움직임에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고속정 3편대에 상황발생시 1,2편대를 지원하는 예비대 임무를 주는 등 경계태세를 강화했습니다.



자기 어선을 관리할 것으로 보였던 북조선 경비정은 어선들이 있는 지점을 지났지만 속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수상한다고 판단한 남조선 2함대 사령부는 ‘해병대 연평려단’에 ‘어선들의 작업을 중단시키고 연평도로 복귀 지시를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9시54분 연평도 서쪽 7킬로미터 부근에서 육도 경비정이 해상경계선을 넘었습니다.



남1 : 총원 전투배치!



전투배치 조치를 취한 남조선 1편대 고속정은 교전규칙에 따라 “해상경계선을 넘었으니 돌아가라”는 방송과 점멸등을 통해, 북쪽으로 돌아 갈 것을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육도 경비정의 남하는 계속됐습니다. 그러자 고속정 1편대는 ‘경고사격’ 전단계인 ‘차단기동’ 일명 ‘밀어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차단기동은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 함정의 앞을 가로지르며 위협하는 것입니다. 적이 침투하는 길을 막아서서 돌아갈 것을 경고하는 이 작전은 사실 매우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차단기동을 하게 되면 적의 함정 정면에서 옆구리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당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위험한 작전을 전개하면서도 당시 남조선의 김대중 정부는 ‘선제공격’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조선 군대 지휘관들 중에서는 “가까운 거리에서 차단기동을 하면서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일단 얻어맞고 싸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좀 더 이야기를 하겠지만 ‘차단기동을 하면서 선제공격을 못하게 막은 것’은 남조선 정부가 북조선의 무력도발에 방심하고 있었으며, 될수록 무력충돌을 피하고 해상경계선 방어에 주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시선을 서해바다로 돌리겠습니다. 남조선 고속정 1편대가 ‘차단기동’을 시작하자 북조선 육도 경비정은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북조선 경비정은 해상 경계선을 넘어오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남조선 해군의 경고방송을 들으면 대부분 그대로 물러나곤 했습니다. 2002년 상반기에도 북조선 경비정은 11차례 해상경계선을 넘어왔는데 경고방송을 하면 북조선 쪽 해역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마찰 없이 육도 경비정이 방향을 돌리자 제2군 사령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순침범’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10시15분, 해상경계선 남쪽 바다로 침투하고 있는 등산곶 경비정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던 고속정 2편대에게도, ‘차단기동’에 들어가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명령에 따라 고속정 2편대 소속 참수리호 358호와 357호가 10시23분에 차단기동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358호가 950미터 거리에서 등산곶 경비정 앞을 횡으로 가로질렀습니다. 그때 등산곶 경비정은 358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차단기동을 준비하고 있는 357호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85mm포 등 모든 포신이 357호를 겨누었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2002년 서해교전의 진실> 첫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6.29 서해교전은 김정일의 ‘6·15 격침작전’이었다> 신동아. 2002.08

- <“연평해전·서해교전은 김정일 ‘평화협박 전술’ 지시받은 3호청사·인민무력부·해군사령부 합동작품”> 신동아. 2006. 07

- <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신동아. 2008-06-25

- [긴박했던 교전상황] '돌아가라' 접근하자 北 기습. 조선일보. 2002.06.29

- [서해도발 교전상황] 쏘지않고 밀어내려다 당했다. 조선일보. 2002-06-30

- 서해교전 비화…北 수뇌부의 치밀한 계획. 조선일보. 2007-06-28

- [기고]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김홍렬·前해군참모총장 2008-06-27

- 고 윤영하, 한상국, 조천형 … 6년만에 마침내 영웅이 되다. 중앙일보. 2008.06.30

- LG 주간경제, 2001.03.28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