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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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3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2001년 5월 4일, 세계의 시선이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쏠렸다. 위조려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체포되여 중국으로 추방당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왕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비대한 몸집의 남자가 공항에 나타나자 카메라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수염을 깍지 않아 덥수룩한 얼굴은 귀찮다는 듯 찌푸려졌다. 얼굴에서 거만함이 묻어났다. 그 순간 기자들 속에서 ‘닮았다’는 말이 튀어 나왔다. 불룩한 배며, 오만방자한 얼굴이 영락없는 김정일이었다. 이렇게 김정일의 맏아들인 김정남은 범죄자의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김정남의 불법입국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감춰져있던 그의 행적이 서서히 드러났다.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나리타 공항 관계자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김정남을 체포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김정남의 입국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문제는 김정남이 체포됐을 때 지니고 있던 려권으로 2000년 10월과 12월에 세 차례나 일본에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최첨단 려권감지기를 설치한 나리타공항에서 같은 려권을 세 번이나 무사히 통과시켰다가 네 번째 만에야 위조려권임을 적발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리해하기 힘듭니다.



이 때문에 ‘외국 정보기관에서 김정남의 입국 정보를 흘렸다’는 첩보가 돌았고 특히 미국 CIA가 그 배후로 지목됐습니다. 일본 법무성은 외국 정보기관에서 사전에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했지만 ‘정보제공설’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한 언론에서는 ‘미국 CIA가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실과 무기 거래대금 세탁에 관한 정보를 일본에 흘려 일본이 김정남을 잡지 않을 수 없게 했다’는 일본 정보 소식통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정보기관의 특성상 비밀이 많기 때문에 김정남이 CIA의 ‘정보제공’에 의해서 체포됐는지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김정남을 심문한 일본 공안조사청은 김정남이 조선의 미싸일과 무기 판매를 담당하는 총책임자라는 것과 김정남이 일본에 들어오려고 한 것이 미싸일 판매대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 공안 관계자로부터 결정적인 정보를 얻은 한 기자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당시 조선은 대공미사일 300개를 이라크에 수출했습니다. 이라크는 서방 정보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미싸일 값을 스위스, 홍콩, 오스트랄리아의 시드니, 도꾜 등 네 곳의 비밀은행 계좌에 나누어서 지불했습니다. 체포되기 전 김정남이 거친 나라들은 이라크가 미사일 대금을 나누어 입금한 나라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김정남은 각 나라들에 가서 돈을 회수한 후 다시 그 돈을 중국의 비밀계좌를 거쳐 평양으로 보냈습니다. 스위스와 홍콩, 시드니의 돈을 회수한 김정남은 마지막 돈을 처리하기 위해서 일본에 입국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김정일의 맏아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무기판매대금을 회수하는 일에 뛰어든 것일까요? 먼저 폐쇄정책과 테로지원국으로 지목되여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조선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외화벌이에 치중하고 있고, 이 중에서 무기밀매는 막대한 외화벌이의 원천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이러한 중요한 분야에 아무 사람이나 쓸 수는 없습니다. 김정일은 원래 대단히 중요한 부문에는 보통 사람들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김정일의 별장과 비자금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위스에도 이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고 한 로동당 고위 간부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김정일은 자기 서기실에서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스위스 대사로 내보냈으며 그 나라에는 보통 사람들이 대표단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1996년 당시 스위스 대사는 김정일의 중학교 동창생이고 서기실에서 일하던 사람이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저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FO)



더구나 김정일은 고위층 간부들이 서방이나 남조선으로 망명하는 것을 계속 목격해 왔습니다. 특히 1997년 미사일 수출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장승길 에짚트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은 김정일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장승길 대사는 외교부 아시아 중동 국장과 부부장을 거친 외교부내 핵심 인물이고, 아랍국가에 대한 무기판매에 깊숙이 관여해 왔습니다. 그만큼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 막대한 정보를 쥐고 미국으로 망명해 버리자 김정일이 받은 타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더욱이 같은 해 김일성의 서기까지 지냈던 황장엽 국제담당비서가 남조선으로 망명한 사건까지 겹쳐서 김정일은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습니다. 김정일이 자신의 맏아들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같은 속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국제사회의 언론들이 김정남의 체포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린 것과는 달리 북조선에서는 단 한줄의 보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가계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할 수 없는 북조선에서, 더구나 망신스러운 일을 보도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더 큰 리유는 김정일에게 30대의 숨겨진 맏아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인민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를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이 같은 조건속에서 장군님의 맏아들은 국제적인 범죄자처럼 위조려권을 만들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불법무기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김정남은 다시 평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김정일은 잃은 것이 많습니다. 첫째, 김정남의 일본 내 조직이 파헤쳐지면서 김정일에게 향하는 커다란 돈줄이 끊겼습니다. 둘째, 무기 판매로 외화를 조달해온 김정남의 존재가 공개되였고 그 결과 불법 무기판매가 위축되였습니다. 셋째, 김정남의 일본 불법입국 사건은 김정일이 아들까지 동원해 불법무기거래라는 국제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줬습니다. 넷째, 김정일 가계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드러나 그들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김정남은 체포될 당시 가방 속에 10만딸라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갑 속에도 100딸라 짜리와 1만엔짜리 지폐가 3㎝두께로 들어 있었습니다. 김정남을 비롯해 그와 동행한 여인들은 값비싼 옷과 갖가지 사치품으로 치장하고 있었습니다. 수백만이 굶어 죽은지 몇 년도 되지 않은 북조선, 이 나라를 령도하고 있다는 최고수뇌부의 가계가 온갖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김정남이 온몸으로 확인해 준 것입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마지막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 자료>



1. “특종! 작은 장군, 김정남의 비밀행각”, 신동아, 2001년 6월호

2. “김정남 체포 日 현지 모습”, 2001-05-03, 조선일보

3. “[현장클릭]김정남 코미디”, 2001-05-06, 조선일보

4. “김정남 가방엔 100달러 지폐로 가득”, 2001-05-04, 조선일보

5. “김정남 송환/ 도쿄 출발서 베이징 도착까지”, 2001-05-04, 조선일보

6. “김정남 일행'중 1명 려권은 진짜”, 2001-05-04, 연합

7. “日, `김정남 사건' 속전속결 처리”, 2001-05-04 연합

8. “김정남 의문' 증폭, 韓· 中 ·日정부 침묵”, 2001-05-08 조선일보

9. “경원하, 북미에서 활동한 세계적 핵공학자”, 2003-04-20 한겨레

10. “김정남의 일본내 거점 ‘마루낑 비즈니스호텔’의 비밀”, 신동아, 200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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