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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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2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2001년 5월 4일, 세계의 시선이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쏠렸다. 위조려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체포되여 중국으로 추방당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왕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비대한 몸집의 남자가 공항에 나타나자 카메라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수염을 깍지 않아 덥수룩한 얼굴은 귀찮다는 듯 찌푸려졌다. 얼굴에서 거만함이 묻어났다. 그 순간 기자들 속에서 ‘닮았다’는 말이 튀어 나왔다. 불룩한 배며, 오만방자한 얼굴이 영락없는 김정일이었다. 이렇게 김정일의 맏아들인 김정남은 범죄자의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김정남의 불법입국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감춰져있던 그의 행적이 서서히 드러났다.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5월 4일 10시 20분경 불법입국자 수용소에서 ‘김정남 일행’을 실은 승합차가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카메라 후라쉬 불빛이 일제히 터졌습니다. 위조려권을 통해 불법입국을 하려고 했던 범죄자의 처지였지만, 어른이 된 이후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던 김정일의 맏아들이 세상에 공식 등장하는 순간이였습니다. 승합차에서 내린 김정남은 공항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신을 추방할 북경행 비행기쪽으로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걷다가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기자들을 한번 둘러본 뒤 비행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불법입국자는 범죄사실이 있을 경우 억류할 수는 있지만 별 문제가 없으면 국외로 추방하는 것이 국제관례입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67시간만에 김정남을 추방했습니다. 김정남을 처벌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추방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은 그해 4월에 조.일관계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했습니다. 비록 식민지통치 배상문제와 일본인 랍치 문제 등으로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7년 반만에 열린 회담이였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서는 김정남 처리 문제로 조.일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특히 출범한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고이즈미 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테고, 나아가 ‘김정남 사건’을 조.일 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조.일 관계를 고려한 일본 정부의 배려로 김정남은 큰 망신을 당하지 않고 일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김정남을 그냥 풀어준 것은 아니였습니다. 김정남을 추방하기 전까지 조선의 보위부에 속하는 공안 조사청이 달라붙어 일본에 들어온 목적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김정남이 추방된 이후에도 수사는 계속됐습니다. 공안 조사청은 김정남을 추방하기 전에 지문을 채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계적으로 수사 능력을 알아주는 공안조사청은 이 지문을 토대로 김정남의 일본내에서의 행적을 추적해 들어갔습니다. 김정남의 일본 조직을 파헤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공안조사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일본의 한 언론을 통해 일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내레이션 김정남이 위조려권으로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이후 공안조사청이 파괴활동방지법을 근거로 각 구청에 재일한국인의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김정남이 추방된지 3개월 만에 공안조사청이 파괴활동금지법을 근거로 재일 동포 300여명의 신원을 뒷조사해서 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 당국이 파괴활동금지법으로 수사활동을 벌린 것은 두 번째인 만큼 김정남사건은 국가적 사안으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김정남이 일본에 들어오려고 했던 진짜 목적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알려진 것이 있다면 조사과정에서 “아이에게 도쿄의 놀이공원인 디즈니랜드를 보여주기 위해 왔다”고 한 김정남의 말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김정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북조선 체제 특성상 김정일의 지시 없이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김정일의 가족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 같은 사실은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의 수기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성혜랑의 수기 ‘등나무집’에는 김정남을 키웠던 외할머니가 정남을 해외에 유학시키기 위해 벌렸던 고생담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할머니가 ‘단장’이 되어 모스크바로 떠났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게 이루어진 첫 출발이었는지는 하느님이나 아시겠는지.



이후 김정남이 스위스로 유학을 갈 때도 김정일의 허가를 받은 후에 이뤄졌습니다. 심지어 김정남은 조선 내에서 특정 지역으로 이동할 때도 김정일의 허락을 받고서야 이동을 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지만 김정일의 가족에 대한 통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따라서 김정남이 김정일의 승인 없이 해외여행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김정남이 일본을 방문한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김정남이 추방되고 나서도 그가 일본에 불법입국하려고 했던 목적에 대해서 갖가지 추측이 란무했습니다. 이를테면 ‘김정남이 교착상태에 빠진 조.일수교협상을 하기 위해 왔다’, ‘김정남이 조선의 정보기술 정책을 책임지는 컴퓨터위원회 위원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의 고급 컴퓨터 부품을 구입하고 또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왔다’, ‘일본의 어떤 국회의원을 만나 모종의 거래를 하기 위해 왔다’, 이렇게 갖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추측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김정남의 일본 불법입국 목적’을 본격적으로 추적하기에 앞서서,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맏아들이라는 사람이 ‘위조려권’을 쓰는 모험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발각될 경우 김정일의 대외적 위신을 깍아 내릴 뿐 아니라, 외교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인데 고작 놀이공원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리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김정일의 장남이 나서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다시 시간을 김정남이 체포됐던 5월 1일의 나리타공항으로 다시 돌리겠습니다. 공항 출입국관리소 직원 8명이 ‘중요 불법 입국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승객들을 긴장된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직원1 : 저 사람이다!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두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 자료>



1. “특종! 작은 장군, 김정남의 비밀행각”, 신동아, 2001년 6월호

2. “김정남 체포 日 현지 모습”, 2001-05-03, 조선일보

3. “[현장클릭]김정남 코미디”, 2001-05-06, 조선일보

4. “김정남 가방엔 100달러 지폐로 가득”, 2001-05-04, 조선일보

5. “김정남 송환/ 도쿄 출발서 베이징 도착까지”, 2001-05-04, 조선일보

6. “김정남 일행'중 1명 려권은 진짜”, 2001-05-04, 연합

7. “日, `김정남 사건' 속전속결 처리”, 2001-05-04 연합

8. “김정남 의문' 증폭, 韓· 中 ·日정부 침묵”, 2001-05-08 조선일보

9. “경원하, 북미에서 활동한 세계적 핵공학자”, 2003-04-20 한겨레

10. “김정남의 일본내 거점 ‘마루낑 비즈니스호텔’의 비밀”, 신동아, 200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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