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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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양제, 대운하를 건설하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4




안녕하십니까? 과거로부터 현재를 리해하고 그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배우는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시간의 송현정입니다. 오늘은 그 열여덟 번째 시간으로 ‘수나라 양제, 대운하를 건설하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유럽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족이 새 주인으로 자리를 잡아갈 무렵, 중국에서는 400여년에 걸친 분렬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통일왕조가 세워졌습니다. 바로 589년 양견이 세운 수나라입니다. 중국의 력사를 말할 때 보통 진나라와 한나라, 수나라와 당나라를 각각 하나로 묶어 설명하곤 합니다. 그 리유는 진나라가 세운 통일국가의 기초우에 한나라가 번성하였고, 수나라가 세운 통일국가의 기초우에서 당나라가 발전했다고 보기 때문이죠. 또한 진나라와 수나라가 둘 다 강력한 힘으로 통일을 이루었으면서도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하고 금방 몰락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문제 황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고 있는 수나라를 세운 양견은 한족과 선비족의 피가 섞인 인물입니다. 선비족은 흉노, 저, 갈, 강족과 함께 ‘5호’라 불린 이민족으로, 중국 북부에 ‘북위’라는 강력한 나라를 세웠었습니다. 양견은 이 북위 왕조에 반기를 든 선비족 반란군의 핵심인물이었습니다. 문제 황제가 죽은 이후 그의 둘째아들이 제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양제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양제는 병상에 누워있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양제는 우선 아버지가 완성하지 못한 수도 건설을 마무리했습니다. 수나라의 수도는 장안 대홍성이었는데요, 훗날 세계적인 도시로 이름을 떨치게 된 당나라 수도 장안은 바로 수나라 때의 대홍성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한편 양제의 통치 중 가장 두드러진 일은 대운하 건설입니다. 정치적 통일을 이룬 수나라에게는 경제적 통일이 필요했는데, 양제는 역대 왕조들이 파놓았던 운하들을 정리하여 통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대륙에는 황하강과 양자강을 비롯해 백하, 회하, 전당강 등이 흐릅니다. 운하건설은 이 강들의 지류를 련결하고,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강바닥을 파내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황하와 회하를, 이어서 황하와 백하를, 끝으로 양자강과 전당강을 련결하여 중국대륙을 남북으로 관통하게 했습니다. 운하의 폭은 약 60m, 총 길이는 약 2천km에 달했습니다. 공사를 시작한 지 6년 만인 611년, 대운하가 완성되었습니다. 양제는 락양을 떠나 강도까지 순행길에 올랐는데요, 룡선을 타고 운하를 따라 내려가니 배 젓는 사람만 8만 명이요, 꼬리를 문 배의 행렬이 200리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운하가 중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했습니다. 남쪽의 풍부한 물자가 빠르고 안전하게 북쪽으로 대량 운반되어 남북간의 경제교류가 원활해졌고, 바다로부터 대륙 중심부로 들어가는 수로가 트이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운하의 물은 관개용수로도 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운하 건설은 몹시 어려운 공사였습니다. 그에 바쳐진 백성들의 피땀과 희생은 수도 없었습니다. 황하와 회하를 잇는 통 제거 공사에 동원된 사람만 100여만 명이었다고 하니, 전체공사에 동원된 총 인원수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듯합니다.



양제는 운하건설을 마치자마자 이번엔 고구려 원정에 나섰습니다. 아버지 문제 황제가 이루지 못한 조선반도 정복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죠. 612년 1월, 우문술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113만여 명의 대군이 고구려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정벌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수나라 군대는 륙군과 수군이 합류해 일제히 평양성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지만,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대응한 고구려 군에게 골탕을 먹어 수나라 군은 지칠대로 지쳐있었죠. 이 때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 거짓 항복의 뜻을 보이자, 우문술은 철수를 결심하고 군대를 돌렸습니다. 그러자 고구려군은 도처에 군사를 매복시켜 돌아가는 이들을 공격했습니다. 그 중 유명한 싸움이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시는 살수대첩입니다. 이 살수대첩에서 30만 5천의 수나라 군사들 중 약 2700여 명만 목숨을 건져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후, 양제는 친위대 장교의 손에 목 졸려 죽었습니다. 이로써 분렬된 중국을 재통일하여 강력한 전제국가로 군림했던 수나라는 37년 만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제18화 ‘수나라 양제, 대운하를 건설하다’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제19화 ‘알라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를 보내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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