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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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녀황제 측천무후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5




안녕하십니까? 과거로부터 현재를 리해하고 그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배우는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시간의 송현정입니다. 오늘은 스물한 번째 시간으로 ‘중국 최초의 녀황제 측천무후’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력사를 더듬어 보면 녀성으로서 최고 통치자가 된 례가 적지 않습니다. 신라의 선덕녀왕과 진덕녀왕, 에짚트의 클레오파트라,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로씨야의 예카테리나 녀제 등등말이죠. 이들은 여느 남성보다 훌륭하게 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왕가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으로서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에 비해, 중국의 측천무후는 상인의 딸로서 일개 궁녀였다가 중국 최초의 녀황제가 된 인물입니다.



측천무후. 그의 본명은 조, 성은 무, 산서성 문수현에서 목재상의 딸로 태여났습니다. 빼어난 미모를 지닌 그는 당나라 두 번째 황제였던 태종의 부름을 받아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태종은 그에게 무미라는 이름을 내리고 궁녀로 삼았으니, 그의 나이 14살 때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랑’이라고도 불렀습니다. 649년 태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태자 ‘치’가 태종을 병문안 왔다가 곁에서 시중들고 있는 미랑의 자태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태종이 병사하자 치가 제3대 황제 고종이 되었는데, 미랑은 고종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소의’라는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소의는 황후가 아닌 왕의 첩들에게 내리는 지위를 말하는데, 미랑의 야심은 황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황후와 경쟁자들이었던 또 다른 소의들을 모두 제거하고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릅니다. 물론 그는 명문귀족이 아닌 상인의 딸인데다가 선왕인 태종의 궁녀였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대는 매우 컸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종은 미랑을 황후로 책봉하니, 655년 미랑의 나이 32세 때의 일입니다.



이후 그는 측천무후라고 불리게 되었는데요, 꿈을 이룬 측천무후는 직접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타고난 정치가였다고 하네요. 고종은 지병이 있어 나라 일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그가 대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훌륭하게 일처리를 했기 때문에 고종은 나라 일을 아예 그에게 위임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고종과 무후를 가리켜 이인천자, 즉 두 명의 군주라고 했답니다.



측천무후는 그가 나라 일을 전면에서 하기 시작한 660년 소정방을 파견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는 고구려까지 무너뜨려 수나라의 양제나 당나라의 태종도 이루지 못한 숙원사업인 조선반도 정복을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당나라의 령토는 건국이후 최대로 확장되었습니다. 674년에 그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황제, 황후라는 칭호를 천황, 천후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측천무후의 야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세 아들들마저 독살하거나 모함하여 궁에서 내쫓고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690년, 그의 나이 67세 때입니다.



그는 나라이름을 ‘주’라 고치고 낙양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주나라는 15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705년에 측천무후가 병들어 눕자 재상이었던 장간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측천무후의 셋째 아들이었으며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난 중종을 다시 황제로 추대하고 당나라 왕조를 재건한 것입니다. 그 해 겨울, 측천무후는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습니다.



일개 상인의 딸로 태여나 중국 최초의 녀황제가 된 측천무후. 그러나 중국의 력사가들은 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측천무후의 통치기에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려 건국 이래 최대 판도를 이루었으며, 백성의 생활은 크게 안정되였습니다. 50년에 달하는 그의 치세 동안 농민반란이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과거제도를 공정하게 실시하여 실력 있는 인재를 대거 등용했습니다. 그가 발탁한 인재들은 훗날, 당나라 문화를 이끄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후 당나라의 국력과 문화는 712년 현종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제21화 ‘중국 최초의 녀황제 측천무후’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제22화 ‘게르만족, 유럽을 석권하다’를 보내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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