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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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의 최초 세계일주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5




안녕하십니까? 과거로부터 현재를 리해하고 그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배우는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시간의 송현정입니다. 오늘은 서른여덟 번째 시간으로 ‘마젤란의 최초 세계일주’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1519년 9월 20일 뽀루뚜갈 태생의 에스빠냐 항해가 마젤란은 5척의 배와 240여 명의 선원을 이끌고 에스빠냐의 항구 산루카르데바라메다를 출발했습니다. 그의 항해 목표는 동방으로 가는 새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콜롬부스가 발견한 대륙이 인디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대서양을 건너 인디아로 가려는 노력은 다시금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3개월이 지난 후 마젤란 일행은 남아메리카대륙, 지금의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에 도착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일행을 대환영했습니다. 다시 마젤란 일행은 항해를 계속했는데요, 이 때부터 어려움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1520년 4월 2일에는 선원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5월에는 배 한 척이 난파를 당했으며, 또 11월에는 또 다른 한 척의 배가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1월 28일 마젤란 일행은 남아메리카의 최남단에 도착했습니다. 대륙과 섬 사이의 좁은 해협을 무사히 건넌 이들은 이 해협에 ‘마젤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 앞에 놓여진 것은 처음 보는 드넓은 바다였습니다. 대서양에 비해 너무도 잔잔한 이 바다를 보고 마젤란은 ‘태평양’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젤란 일행은 태평양을 북서쪽으로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시무시한 항해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천지에 가득 찬 물뿐, 어디에도 륙지는 없었습니다. 식량이 다 떨어지고 괴혈병이 돌아 선원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갔습니다. 이듬해 3월 일행은 드디어 륙지를 발견했는데요,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닌 지 무려 4개월만이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태평양 북서부 지금의 마리아나제도였습니다. 그리고 4월 일행은 필리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마젤란 일행을 친절하게 맞이했던 원주민들은 이들이 너무 거칠게 나오자 저항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전투로 이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원주민들의 승리로 끝이 났고, 마젤란은 그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나머지 선원들은 두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급히 도망쳤습니다. 도망친 두 척의 배는 향료가 있는 나라를 찾아 항해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지휘자를 잃은 이들은 해적으로 변하여 중국 무역선을 공격해 향료를 비롯한 값진 물건들을 몽땅 빼앗기도 했습니다.



1522년 9월 6일, 에스빠냐의 산루카르데바라메다 항구에 낡은 배 한 척이 도착했습니다. 이름은 빅토리아 호. 3년 전 마젤란이 인솔하여 떠났던 5척의 배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배는 아프리카를 도는 머나먼 항해 끝에 마침내 출발지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240여 명의 승무원 가운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18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싣고 온 향료는 아주 비싼 값으로 팔려서 항해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았습니다. 마젤란 일행의 세계일주 성공으로 유럽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아프리카를 돌아 인디아, 이어 동쪽으로 더 나아가 말레이시아를 점령해 향료무역을 독점했던 뽀루뚜갈은 동방산물의 중심지로 급부상했습니다.

새 항로의 발견은 유럽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막대한 량의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와 에스빠냐는 유럽의 부유한 국가로 급성장했습니다. 이 금과 은이 유럽으로 류출되어 이른바 가격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봉건령주나 농민, 임금생활자들의 생활은 어려워진 반면, 상공업자들은 더욱 부유해졌습니다. 상공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국왕은 상공업을 보호 장려하고 해외 식민지 개척을 적극 지원했는데요, 에스빠냐와 뽀르뚜갈이 그 선두주자였습니다.



당시 유럽의 해외무역은 략탈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유럽은 막대한 리익을 취한 반면 아시아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파괴당했습니다. 새 항로는 세계를 하나로 잇는 데 기여한바 컸으나, 그 주도권이 유럽 사람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세계 력사는 당분간 유럽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제38화 ‘마젤란의 최초 세계일주’ 편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제39화 ‘잉까제국의 멸망’ 편을 보내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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