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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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33

황장엽 회고록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지난 이야기: 김정일은 빠른 속도로 실권을 장악해 갔고, 그의 전횡도 날로 심해졌습니다. 당 기구를 즉흥적으로 마구 확대하고, 자기 생일에 즈음해서는 진상품을 올리는 운동까지 전개했습니다. 또 중앙당 일꾼들이 살던 본청사도 김정일 한사람을 위한 호화로운 왕국으로 바뀌었고, 그것도 부족해 커다란 청사를 10개 동이나 더 지었습니다. 주체사상을 세계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소조를 꾸미고, 국제세미나를 개최한 것도 바로 이때 부터였습니다.





나는 주체사상 국제세미나가 열리면 조선대표단 단장으로서 참가했다. 그러면서 주체사상의 진리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개인우상화와 북한의 허위선전에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세미나에 참가한 학자들에게 그 진수를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를 고심했다. 그래서 조총련에서 온 학자들에게 주체철학의 진수를 인식시키기 위해 숨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각국의 주체사상대표단에게도 같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테면 1979년 4월 인도에서 열린 주체사상 국제토론회 때 일본대표단을 이끌고 참가한 오가미 켄이찌(尾止健一)에게는 조선의 주체사상을 그대로 모방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실정에 맞게 일본화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또 각각의 민족은 자기 나라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주체사상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여러 자리에서 강조했다.



하지만 그렇게 강조했다고 해서 각국 대표들이 내 의도를 제대로 알아차렸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주장하는 것은 허위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외국손님들과의 담화에서 김정일이 요구하는 대로 선전을 하면서, 동시에 참된 주체철학의 원리를 인식시키려고 애쓰는 게 고작이었다.



1979년 10월,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김일성은 김정일의 제의에 따라 세계를 겨냥하여 주체사상의 선전을 더욱 강화하고 외국에 조직된 소조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당 중앙위원회 내에 ‘주체사상연구소’를 비공개 부서로 설치하기로 했다. 김일성은 나를 그 연구소의 소장으로 임명했다.



나는 14년여의 긴 세월 동안 일해온 김대를 떠나는 게 몹시 서운했다. 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지 못한 채 떨어져서 근무해야 한다는 것도 가슴 아팠다. 김대는 내 마음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정신의 고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짐을 챙겨 철수하던 날, 나는 총장실에서 14년간의 희비(喜悲)를 떠올리며 아무도 모르게 울었다.







6. 권력의 중심에서





굵직굵직한 감투



1979년 10월 15일, 정치국 회의 결정으로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이된 나는 중앙당으로 출근해야 했으나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서 손님과 동행한 채 함흥지구에 있었다. 그래서 첫 출근이 며칠 늦어졌다.



출근 첫날 나는 먼저 김정일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김정일을 당 본청사의 집무실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서 금수산 의사당(주석궁)에서 김일성은 자주 만났지만, 당 청사에는 찾아갈 일이 별로 없었다. 본청사는 내가 서기로 근무하던 1950~60년대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호화롭게 꾸며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김정일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황 선생. 오랜만입니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러면서 10월 15일 정치국에서 결정된 내용을 알려주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방금 수령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황 선생은 학자이시기 때문에 당 일꾼이 되는 걸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우선 황 선생에게 당에 들어와 일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라 하셨습니다.”



“수령님의 슬하에서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자라났으나 일을 잘하지 못하고 심려만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번에 또 다시 주신 신임과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내 대답을 듣자 김정일은 대단히 만족해하며 김일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 선생이 찬성했습니다. 예, 오늘부터 정식으로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일을 맡기겠습니다.”



나에 대한 김정일의 처우는 이례적이었다. 김정일은 당 중앙에 들어와 간부들의 이론수준을 높이는 일에도 책임지고 나서줄 것을 지시하는 동시에 주체사상의 대외선전도 잘 해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주체사상연구소는 사상이론적으로 대외사업을 하는 당 국제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앙당 부장으로서 허담 동무(외교부장)도 불러서 과업을 좀 주시오. 주체사상 대외선전을 한 30년간 줄기차게 하다보면 세계 사상계에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나는 김정일이 양형섭을 중앙당에서 내보내고 그 대신 허담을 중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내가 중앙당 부장으로서 행정기관인 외교부에 대한 지도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 허담을 불러 과업을 주라고 한 것은 나를 추켜주기 위한 말이라고 새겨들었다. 그러나 주체사상 선전을 한 30년간 줄기차게 해야 효과가 날 것이라고 한 말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 부서를 만드는 것이니까 사람을 잘 골라 보시오. 당 간부부에서 적극 도와줄 것이니 11월 중으로 조직인선을 끝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부장들이 다 모이기 때문에 그때 소개하도록 합시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국제부 때부터 주체사상 관계를 담당해온 과장이 이미 발령을 받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와 사업방향과 인선문제에 대해 협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쁘게 조직인선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정치국 회의에 참석하라는 기별이 왔다. 그래서 금수산 의사당 내의 정치국 회의실로 갔더니 김일성이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치국 회의에서 뜻밖의 일이 생겼다.



김일성이 나를 과학교육담당비서로 임명한다고 선포한 것이었다. 나는 몹시 놀랐다. 과학교육부는 전체 교육기관과 과학연구기관 그리고 보건기관들을 담당 지도하며, 이 분야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는 중요한 부서이다. 나를 과학교육비서로 임명한 것은 나에 대한 커다란 신임의 표시였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33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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