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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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여덟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지난이야기 : 1960년대 들어서면서 북조선은 쏘련과 분쟁을 겪게 되였습니다. 이 분쟁으로 쏘련으로부터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가 끊기게 되자 김일성은 자주적인 국방로선을 강조하며, 군수공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북조선은 점차 군사체제로 변질되여 가는데.....



쏘련과의 분쟁이 시작되면서 김일성은 중국 쪽으로 더욱 기울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1966년 모택동의 직접적인 선동으로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조중 관계가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수정주의에 맞서 계급투쟁과 문화혁명에 나서라는 모택동의 선동에 홍위병들이 일어나고 이들이 4인방 세력과 결탁해 당 지도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을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의 바람은 북조선에까지 불어 닥쳤습니다.



중국은 김일성이 문화대혁명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비난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당시 북경주재 중국 대사관은 이 같은 움직임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외교부장 허담에게 수시로 련락을 취했습니다.



허담 : 그래, 이번엔 무슨 말이 돌고 있는가?



대사 : 그게 입에 담기가.....



허담 : 마음 놓고 말하라. 정확한 내용을 알아야 우리도 대응할 것 아니야.



대사 : 오늘 광주에서 출판된 <문혁통신>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허담 : 그래 그래. 빨리 읽어보라.



대사 : 김일성은 반혁명 수정주의자이며, 과거 조선의 황제와 같이 대문을 여섯 개나 지나야 그의 황실에 도달할 수 있다. 그의 궁궐은 평양뿐 아니라 금강산, 주을온천, 압록강 신의주에 있고, 동해 쪽으로는 청진에 별장이 있다. 김일성은 비대해졌고 옛날의 황제처럼 보일 뿐, 도무지 사회주의 혁명을 하는 투사 같지 않다.



허담 : 이 새끼들, 이젠 수상동지의 인격까지 모욕한단 말이야. 알았어. 계속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보고하라.



대사 : 알겠습니다. 부장 동지.



홍위병들은 신문, 대자보 등을 통해 ‘김일성은 수정주의를 하는 흐루쑈브의 제자다, 이런 김일성을 장령들이 체포했다’는 인신공격과 근거없는 소문을 계속 퍼뜨렸습니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김일성은 흐루쑈브의 쓰딸린 비판이 시작되면서 쏘련파와 연안파로부터 공격을 당했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김일성은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습니다. 우방국가들의 기자들에게 중국의 비방이 터무니없고 그들이 수정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명하는 한편, 북경주재 북조선 대사를 소환하고, 평양 주재 중국 대사를 추방해 버렸습니다. 조선과 중국의 관계는 격한 대립상태로 치달았습니다.



이렇게 쏘련과 중국과의 분쟁을 차례로 겪으면서 김일성은 두 나라를 더는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김일성은 최용건을 만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론의했습니다.



김일성 : 최동지, 그동안 중국과 쏘련간의 대립속에서 줄타기를 해가며 리익을 많이 챙겨왔지만 이제 더는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최용건 : 그동안 중․쏘분쟁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가 많이 줄었는데, 중국마저 저렇게 나오니 경제계획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였습니다.



김일성 : 앞으로 관계가 회복되겠지만 더는 과거와 같은 관계로는 되돌아 갈 수 없을 테고, 이제 공화국도 기틀을 잡았으니 이참에 정면으로 치고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최용건 : 정면으로 치고 간다면.....



김일성 : 주체로선을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쏘련과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입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김일성은 문화대혁명의 바람을 리용해 자신의 독재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다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외정세가 변할 때마다 내부를 통제하며 자신의 독재체제를 강화해 왔던 김일성의 권력장악 수법이 다시 한번 발동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966년 당대표자회의에서 쏘련과 중국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주체로선을 공식화 했고, ‘국방건설과 경제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로선’을 공식 채택해, 자체의 국방력으로 남조선을 해방하겠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의 발목을 잡는 세력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갑산공작위원회 출신인 이른바 갑산파였습니다. 당시 당 내부의 권력구조를 보면, 김일성의 숙청사업으로 모든 세력이 제거되고 김일성 직계의 빨찌산파와 국내 공산주의자 계열인 갑산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 갑산파가 김일성의 군사 우선의 중공업 우선정책을 반대하며 인민경제를 우선시할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사실 갑산파는 김일성의 정책에 반대했을 뿐 김일성을 반대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또 김일성에게 도전할 만한 세력도 못됐습니다. 김일성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김일성은 1967년부터 1년 넘게 갑산파 숙청 사업을 벌렸습니다. 이 숙청 사업은 지방 말단에까지 번질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사건이 이렇게까지 확대된 데는, 문화대혁명의 여파를 리용해 김일성이 권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섞여 있었지만, 김일성의 후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었던 당내의 파벌투쟁도 큰 작용을 했습니다. 김일성의 후계자를 염두에 두고 있던 세력들은 갑산파 숙청을 틈타, 서로의 경쟁자들을 없애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켰습니다. 특히 1964년에 중앙당에 들어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던 김정일이 끼어들면서 갑산파 숙청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여덟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2.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 시대정신. 황장엽 지음

3. 현대 북한의 지도자. 을유문화사. 서대숙 지음

4. 한 권으로 보는 북한사 100장면, 가람기획. 고태우 지음

5.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기파랑, 교과서포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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