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5시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제141부 수령님 만세만 부르시라요, 일곱 번째

평양 25시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5




지난이야기 > 꽁고의 싸쑤 대통령은 김일성의 생일 놀이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놀음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면담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리를 비켜나지 않는 우리가 못마땅했는지 의례국장이 들어왔다.



『다른 승객들의 비행기 탑승이 다 끝났고, 북조선 대표단은 빨리 공항으로 나와 달라는 독촉 전화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야기가 끝났음을 알고 있었으며 무례할 정도로 싸쑤 대통령을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일어날 수 없는 처지였다. 우리는 또다시 대통령에게 애걸하듯 요청을 했다.



『량국 사이의 협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국가 수반이 자주 만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은 이번에 싸쑤 대통령께서 꼭 오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비행기가 떠나지 못하고 기다린다는데 어서 떠나십시오.』



대통령은 우리의 끈덕진 요청에 질렸는지 약간의 희망적인 말을 던져 주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과 작별하였다.



멀어져가는 꽁고의 수도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서 나는 <하긴 어떤 한가한 대통령이 수만km를 떨어진 곳의 생일 잔치에 오려 하겠는가. 안 오겠다고 하는데도 부디 오라고 강요하는 우리가 창피한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며 불편한 속을 삭이려 노력했다.



그후 싸쑤 대통령은 4월 17일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그 옆 나라인 북조선은 끝내 방문하지 않았다.



1987년 나는 평양에서 아프리카 기네의 당 정치국 위원이며 그 나라의 제3인자인 사람의 안내를 맡은 적이 있었다. 자기의 비용으로 평양까지 병치료를 위해 온 사람인데 그 나라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였으므로 병치료 기간 동안 완전히 친북조선 인사로 만들기 위해 내가 투입된 것이다.



그를 데리고 남산병원으로 갔다. 검진을 해보니 특별한 병은 없고 나이가 많아 로쇠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였다. 그래서 영양제 주사를 맞게 하고 틈이 나는 대로 평양의 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



그 사람이 온 지 10여 일이 되였을 무렵, 그 사람을 만나겠다는 김일성의 통보가 전해졌다.



나는 그 사람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말은 하지 말고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는 말만 골라서 하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어떤 말을 해야지 김일성의 기분이 좋아지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김일성에 관한 책들을 주면서 이것을 참고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다음날 그 사람과 나는 김일성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김일성의 가계를 들먹이며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 그리고 아들 김정일에 대하여 칭찬을 15분 이상이나 침이 마르도록 하는 것이였다.



북조선 권력층의 실상과 비화를 밝힌, 고영환의 평양25시, 지금까지 랑독에 리광명이였습니다.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