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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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부 김경희와 장성택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김경희가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급동무와 연애를 했다. 장성택이다. 장성택이 어디 출신인지는 모른다. 두 사람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같이 다녔다. 강의시간에 앞뒤로 앉았다고 한다. 장성택이 앞에 앉고 김경희가 뒤에 앉았다는 것이다.



장성택은 매력있는 남자다. 우선 잘 생겼고, 굉장히 재주가 많다. 예능방면에도 소질이 많다. 특히 손풍금을 기가 막히게 연주한다. 술도 잘 마시고 말도 재미있게 잘 한다. 내가 봐도 아주 매력있는 남자였다.



김경희도 예뻤다. 약간 통통해서 그렇지, 눈도 크고 피부도 하얗다. 김경희가 먼저 고백을 했다고 한다. 강의 시간에 솔잎인가 버들가지로 장성택의 귀를 간지럽히는 등 장난도 많이 하면서 연애를 했다는 얘기를 장성택에게서 직접 들었다.



연애한다는 사실이 김일성에게 보고됐다. 리유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김일성이 반대했다고 한다. 둘을 갈라놓기 위해 장성택을 원산 농과대학으로 쫓아보냈다. 그런데 김경희가 워낙 장성택을 좋아해서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장성택과 결혼하겠다고 울고불고 했다고 한다.



김일성 : 또 장성택이 이야기 하려면 나가라!



김경희 : 아버지, 그 동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원산으로 보내셨나요? 차라리 절 지방으로 쫓아내세요.



김일성 : 경희야, 너 그놈 어디가 좋다고 그러니. 출신성분도 좋지 않고, 공부는 안 하고 망탕 놀기만 좋아하는 놈인데,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딴 놈한테 신경을 쓰는 거야.



김경희 : ‘아버지! 성택 동무 없으니까 공부도 되지 않고,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혀요. 저도 그 동무 따라 원산에 가겠어요. 성택 동무랑 결혼할거란 말이에요.



김일성 : 경희야, 그만 울라. 그만 울어.



김경희는 원산까지 쫓아가서 장성택과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등 요란을 떨었다고 한다. 김일성도 하는 수없이 결혼을 허락했다.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열렬한 연애이야기이다.



김정일 왕족으로 신분 상승을 한 장성택은 처음 평양시 당 지도원부터 출발, 내가 관저에 있을 때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당원등록 과장을 하고 있었다. 그 전에는 외교부 담당 과장을 했다.



장성택은 외교부담당 과장을 하면서 해외출장도 많이 가고, ‘충성의 외화벌이’를 진두 지휘했다. 당시 조선 외교관들이 마약 밀수하다 쫓겨나기도 했다는데, 그것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등 진두지휘한 게 장성택이라고 한다.



그렇게 외화벌이 한 돈으로 장성택은 77년 보통강 구역에 초호화 체육관을 지어 김정일에게 바쳤다. 그러나 그 체육관은 개관을 하루 앞두고 준비하던 관계자들의 부주의로 불이나 완전히 탔다. 인명 피해도 많았다.



해설 : 이 건물이 이른바 ‘지도자 동지의 피로를 회복시켜준다는 ‘피로회복관’이다. 장성택은 ‘33호 건설’이라는 암호명으로 건설을 시작했는데, 기본 자재인 세멘트와 강재 등은 북조선 것을 쓰되, 그 이외의 모든 자재와 설비등은 외국에서 수입했다. 막대한 외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장성택은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대사관들에 외화를 바치라고 지시했다. 각 대사관들은 이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비법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북조선 외교관들이 마약에까지 손을 댄 것은 이때부터다.



장성택은 대단한 뒷심이 있었다. ‘위대하신 수령’ 김일성의 사위이자,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하나밖에 없는 진짜 매제였다. 김정일도 장성택을 좋아했다. 70년대 초반부터 김정일은 측근자들과 함께 예술단 무용수들을 불러 연회를 열고 남조선 노래를 부르며 놀았는데, 장성택도 김정일이 항상 부르는 측근이었다.



하지만 장성택이 건방진 행동을 했다. 78년경 김정일의 측근자 술연회를 흉내낸 것이다. 외교부 간부들 중 자신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동평양의 외교부 초대소에서 녀자까지 불러놓고 연회를 연 것이다. 만수대예술단까지는 안 되어도 인민군 협주단이나 예술단 녀자들을 불렀다.



장성택은 1주일에 한 번 정도씩 연회를 열었다. 처음에는 김정일도 모르고 있었는데, 여러 차례 계속되자 정치보위부에서 직보했다. 김정일이 대단히 화를 내면서 장성택을 불렀다고 한다.



장성택 : 지도자 동지 부르셨습니까?



김정일 : 네가 뭔데 내 흉내내가며 연회를 하는 거야. 이 땅에서 세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 몰라.



장성택 : 죄송합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안 그렇겠습니다.



김정일 : 긴말 필요 없어. 당장 혁명화 갈 준비하라!



김정일은 장성택을 강선제강소로 쫓아보냈다. 평양에서 두 시간 정도 가는 곳인데, 작업반장으로 보냈다. 작업반장이면 평민이다. 강제로동을 시킨 것이다. 장성택은 2년여를 고생했다. 넘어져서 불에 데기도 했다고 한다.



80년 2월 16일 관저에 김경희가 들어왔다. 이모는 “고모부 없이 고생이 많다”며 위로했다. 당시 김경희는 중앙당 국제부 과장이었다. 김경희는 “잘못 했으면 처벌받아야지요.”라고 말했다. 이모는 그렇게 말하는 김경희의 속마음을 읽고, 장성택을 풀어달라고 김정일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성혜림 : 이제 고생을 많이 해서 반성도 많이 했을 테니 고모부를 불러옵시다.



김정일 : 아니야, 더 고생시켜야 돼. 그냥 놔둬.



그럼에도 이모는 관저보좌관과 리창원 관저 운수과장을 강선제강소로 보내, 정남이 고모부를 모셔오라고 지시했다. 관저에서 김정일과 가족들이 식사하는데 장성택을 데리고 왔다. 이모가 김정일에게 말하지 않고 부른 것이다. 장성택은 관저에 오는 도중 자기 집에 들러 옷은 갈아입고 왔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장성택이 김정일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성혜림 : 참, 당신도, 고모부가 인사 하잖아요.



김정일 : 큼...



성혜림 : 에이그, 당신도 참 극성이구려. 고모부, 이리 와서 같이 식사해요. 어서 앉으세요.



김정일 : 성택이 너도 한 잔 해라. 그리고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장성택 : 고맙습니다, 지도자 동지. 앞으로 절대로 안 그러겠습니다.



살아 돌아온 것도 기뻤을 것이고, 그 동안의 고생도 서러웠을 것이다. 장성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장성택은 이모가 풀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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