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생활기

  • 방송정보 | 기획 특집
  • 출연정수련

공식 SNS

제93화 분토생산

남조선 생활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2-11 17:05

 


밤사이 눈이 많이도 내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다. 집 앞 유치원 지붕 위에 눈이 어찌나 두껍게 쌓였는지 톡 다치면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정임 : 오늘은 옷을 든든히 입고 출근해야겄네, 얼른 샤워나 하고~


나는 정신 번쩍 들게 샤워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위해 바나나 쥬스를 만들었다. 아침에 밥대신 바나나 쥬스를 만들어 먹은 지도 인젠 석 달이 넘은 것 같다. 첨엔 잘 적응이 안 됐는데, 지금은 제법이다. 쥬스에 아몬드나 딸기, 채소 같은 것도 넣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것 저것 생각하며 만들어 먹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컵을 거의 다 들이 마실 때 쯤이면 배에서 신호가 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는 따끔한 신호에 버튼에 눌린 기계처럼 화장실에 뛰어 들어갔다.


볼일을 다 보고 거뿐한 마음으로 오늘도 출근 길에 나서는데, 눈이 발 목까지 올라왔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초행길이여서 하는 수 없이 눈 속에 푹푹 빠져야 했다.


여기 와서 오래 만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본다. 북한에선 이 만한 눈같은 건 자주 보았는데, 보는 정도가 아니라 이 만한 눈이면 한 며칠은 도로가 땅땅하게 얼어붙어 완전 미끄럼 길이 된다. 그 곳에서 아이들이 썰매도 탄다. 다행히 북한은 10리에 한 대씩 자동차가 지나 다니니 교통사고가 날 위험은 없는 것이다.


그나 저나 고향에선 지금 뭘 할까? 이 맘때가 되면 분토과제 하느라 엄청 고생을 했는데, 그 미끄럼 길에 분토 그루마를 끌고 벌벌 기어 다녔는데, 지금도 분토하라고 달달 볶아대는지? 하긴 이 한 겨울에 사람들을 닥닥질 할 일은 분토밖에 없을 테니 안 봐도 뻔하다~


참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한 사람 앞에 분토 과제 1톤씩, 심지어 5톤이나 내리먹이면 사람들이 어디서 그 숱한 퇴비를 해결한 단 말인가, 그것도 한 두 해도 아니고 해마다 퇴비를 몇톤 씩 내라고 하니 먹는 것도 부실해 나올 것도 없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딱한 노릇이 었다.


퇴비생산총화 때가 되면 맨날 머리를 떨구고 욕이나 한다발 얻어먹고 나와서는 하나같이 먹지도 못하는데 어데서 똥이 나오냐!~ ” 하고 마구 푸념을 해대며 허거픈 웃음 한 바탕 쏟아내던 고향 사람들의 애환을 생각하면 참 씁쓸하다.


문득 탈북 시인 장진성의 똥 값이란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풀뿌리 나무껍질 삼키느라


며칠 만에 변비도 희귀한데


제 놈들이 먹인게 뭘 있다고


나중엔 똥까지 내라느냐


!


두고 보자


배때기 나온 놈들


그 속에 거름도 꽉 찼겠다


백성세상 올 때까지


기다리며 잘 썩어라


!


갑자기 아침에 생각 없이 화장실에 앉아 볼 일을 본 것이 내심 못할 짓을 한 것 같이 느껴졌다. 이젠 아침엔 밥도 안 먹고 바나나로 에울 정도로 잘 먹고 잘 사니 고생했던 옛 일을 다 잊으며 사는 것 같아서~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