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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손전지

남조선 생활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2-04 18:08

 


장사꾼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손전지입니다. 하나에 2000원씩, 이천원씩 받습니다...


지하철의자에 앉아 눈감고 종일 피곤한 마음 달래고 있는데, 우렁우렁하고 재치있는 목소리가 분위기를 깼다.


비스듬히 눈 뜨고 소리나는 쪽을 보니 손전지 여라문개를 허리에 대롱대롱 매단 장사군 아저씨었다. 딱 봐도 한 주먹에 들어가는 작고 깜찍한 손전지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사고 싶은 충동이 불쑥 생겼지만 이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니 쓸데가 별로 없었다. 둘러봐도 누구 하나 사는 사람은 없었다. 아저씨도 몇 번 설명하다가 그냥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저거 북한에선 정말 요긴하게 잘 쓸텐데...” 아저씨 모습이 없어질 때까지 난 손전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쓸데가 없어 사진 않았지만 왠지 자꾸 미련이 남아있어 눈 감아도 손전지가 눈에 아른 거렸다.


북한에선 전지가 정말 귀한 물건이다. 장마당에서 늦게 퇴근해 올 때 저거하나만 있으면 그저 그만이다. 불빛 한 점 없는 캄캄한 밤 골목길에서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구세주같은 귀한 물건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남북한의 밤야경을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남반구는 온통 불천지를 이룬 천국이었고 북반구는 온통 새까만 가운데 평양에만 불이 환하게 있었다. 불 때문에 고생하던 생각을 하니 그래도 한 개 사서 둘 걸 하는 아쉬움까지 남았다.


까막나라 북한 생각을 하노라니 불이 없어 생긴 재미나는 일이 떠올랐다.


북한은 돈 있고 잘 사는 집들은 바떼리로 자체 전기를 생산하거나, 초를 사서 쓰지만 보통 가정들에서는 식용유이나, 디젤유를 사용해서 불을 밝힌다.


식용유를 쓰는 집까지는 그나마 괜찮은 집이다. 하지만 사람이 먹을 기름도 없는 집들에선 디젤유로 불을 밝히는데 그 연기가 어찌나 새까맣게 피어오르는지 조금만 있어도 온 집안에 연기가 가득차 방안의 모든 것이 금방 그을려버린다.


깔끔한 성미의 어머니는 식용유 한 숟가락으로 식사 시간 몇 분만 불을 밝히는 한이 있더라도 새까만 연기가 나는 디젤유는 절대로 쓰지 않으셨다.


하루는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 출입문을 열고 나섰는데 옆집 현이 엄마와 얼굴을 마주치는 순간, 그만에야 하하하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글쎄 현이엄마 얼굴이 디젤연기에 새까맣게 그을려 두 눈만 반짝 반짝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입주위만 새하얗게 살색이 드러나 있었고, 때 마침 출입문을 열고나오는 현이 아빠 얼굴과 너무나 똑 같아서 더더욱 배 그러쥐고 웃었다. 그 놈의 연기가 밤새 부부의 사랑을 입주위에 동그랗게 표시해놓았던 것이였다. 그들 부부도 그제야 서로 마주보고며 재미있어라 배그러쥐고 웃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 살이에 지치고 고달픈 고향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즐거움과 웃음이 있다는 것은 그 나마 참 다행스런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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