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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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내 생애 봄날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8-26 18:25

지난 4년간의 한국생활은 나에겐 꿈같은 날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헤어져 낯 설은 타향에서 참 많은 고생을 하며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꿈에도 오고 싶었던 한국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자상한 남편과 두 돌이 된 큰 딸, 그리고 막 8개월이 지난 둘째 딸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있다.
 
신랑은 우연히 하나원에서 만났다. 탈북자들의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남자를 그것도 한국출신 남자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처음엔 돈을 벌어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편의 구애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의 변함없는 마음과 자상함에 나는 반해버렸다. 많은 돈과 큰 부를 줄 수는 없지만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을 가족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북에 남아 있는 가족생각에 오직 돈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통해 그가 주겠다는 가족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편은 4남 1녀 중 막내다. 당연히 나는 막내며느리이다. 큰 아주버님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제수씨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라고 하신다. 먹고 살기 바빠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았던 난 사랑한다는 이 말이, 더군다나 어렵기만 한 시아주버니의 말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 아주버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둘째 아주버니는 서울의 유명한 예식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해주셨고, 자상한 셋째 아주버니는 퇴근길에 들러 애들은 잘 크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살펴보신다. 시어머니께서는 친정엄마 대신 아이를 낳은 후 산후조리를 도맡아 해주셨다. 친정 부모님과 형제들의 빈자리를 느낄세라 꼼꼼히 챙기고 보살펴주는 시댁식구들. 무슨 말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하나원에서 만난 인연으로 친정 부모님이 되어주신 동장님과 사모님. 천안에 갈 땐 친정집에 가듯 하룻밤을 묵고 온다. 눈을 뜨면 당장 오늘 하루 살 걱정을 해야 했던 북에서는 사람의 정과 담을 쌓은 지 오래다. 살아남아야만 하는 절박한 형편에 다른 사람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곳 한국에 와서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람의 정을 나누며 산다.


북한여자와 남한 남자. 다들 얼마 못갈 거라고 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라 잘 살 수 있을지 처음엔 시부모님께서도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 말다툼 한번 해 본 적이 없다. 내 전생에 무슨 복이 있어 이토록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나 가끔은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한 집과 엄청난 재산은 없어도 평생을 같이 할 남편과 이쁜 두 딸아이, 그리고 언제나 내편에서 응원을 해주는 시댁 식구들. 이 가족이 있어 나는 세상을 다 가진 큰 부자다. 내 인생에 봄날은 계속되고 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때까지 나는 열심히 오늘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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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천은희 씨를 만났습니다.  


식량난을 겪으면서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일념하나로 중국으로 오게 된 천은희씨. 6년 동안 중국에 있으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힘들었지만 가족들을 부양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요. 2004년 강제 북송된 후 자유의 땅을 찾아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게 된 일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 주민등록증을 받고 국적을 얻은 게 가장 좋았다)  
 
천은희씨는 2009년에 한국에 왔는데요. 탈북자들의 한국 정착 시설인 하나원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한국 남자의 구애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또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남편의 열렬한 구애에 결국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하나원 내 법당에 봉사활동을 왔던 남편, 남편이 천은희씨를 보고 한 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구애)


한국 정착 과정을 세세하게 도와주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정착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언어 차이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한국 사람 아니세요?” 라고 묻는 사람들을 만날 때 속상했다)


결혼을 결심하고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갔을 때, 시댁 부모님들은 북에서 온 며느리감을 보고, 혹시 간첩이 아닐까 걱정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하나원에 연락해서 간첩이 아닌지 알아보기도 하셨다고)


결혼을 하고 가장 좋은 건 시부모님, 아주버님, 형님, 조카들 이렇게 대가족이 생겼다는 거였습니다.
(시댁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가족의 정을 느꼈고 참 감사하다)


배려가 많은 시댁식구들 덕분에 결혼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라남도 고흥인 시댁에 가면 사투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도 전라도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남편에게 물어볼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아내와 함께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은희 씨는 남편의 이런 모습이 처음엔 낯설고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것이 이상해서 못들 게 했었다)


결혼식 사진, 아이들 백일과 돌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꺼내서 보여준 은희씨, 자상한 남편과 두 딸, 이렇게 네 식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때,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했습니다.
(산후조리할 때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서 울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은희 씨,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봉사활동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돌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은희 씨의 날마다 행복한 한국 생활을 응원합니다. 
(한국사회에 너무 감사하다)


CM1 양희은_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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