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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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냄새가 나더라도 자랑스러운 내 일터

내 생애 봄날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8-19 17:53

- 내 생애 봄날, 오늘은 탈북자 오지훈 씨 이야기입니다.  


하나원을 떠나 서울이 아닌 충청남도에 자리 잡은 지도 1년이 넘었다.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땐 낯 설은 이 땅에 불시착한 것 마냥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떳떳하게 새 삶의 터전을 닦으리라 결심했었다.


한국정부는 이 땅에 들어온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조건을 보장해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받은 혜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생면부지인 우리들이 이런 혜택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감동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 나라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아서 스스로 나를 보살필 수 있게 되고, 뒤에 오는 동포 한사람이라도 내 손으로 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집은 없어도 자동차는 필수라는 한국에서 나는 먼저 운전면허에 도전했고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그러고 난 후 다음 목표가 환경관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내가 정착을 한 곳은 충청남도에서도 시골이어서 마을에는 자격증을 위한 학원이 없었다. 회계자격증을 공부하려던 아내와 나는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차로 왕복 세 시간 거리의 학원에 다녔다. 복잡한 화학공식을 외워댔지만 쉽지가 않았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일용직 로동자로 하루 일당이라도 버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옆에서 묵묵히 공부하는 아내와 점점 커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못하겠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처음엔 환경관리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완전히 생소한 분야였지만 자격증을 취득해놓으면 한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다고 하여 무조건 선택한 것이었다. 난 북한에서 가정용품수리를 전문으로 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보니 내 기술과 지식은 완전 무용지물이었다. 여기서는 가정용품수리도 철저히 체계화되고 검증된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었다. 결국은 아예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생소한 분야인 ‘환경관리사’를 택한 것이다. 나는 눈에 피가 나도록 책을 보았고, 무조건 외웠었고, 그 결과 드디어 합격을 했다.


곧바로 학원의 추천을 받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취직이 되었다. 축산 회사로 내가 하는 일은 폐수를 정화시키는 일이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는 폐수에서 나오는 냄새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돼지를 도축하고 나오는 폐수는 몹시 역한 냄새가 난다. 위생실에 들어앉아 있는 악취라고 생각을 하면 딱 맞다. 사실 말이 환경관리사이지 폐수관리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폐수를 정화하기 위한 많은 기계 설비들이 있다. 나는 모든 폐수 공정의 설비 조작과 허용 한도와 지켜야 할 사항들을 정확하게 작동시키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폐수 처리 시설이 부하 작동되어 멈춘다면 공장은 가동을 중단을 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지 못하고 인차 그만두고 만다. 냄새나고 힘든 일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을 시작한 뒤로 모두들 나에게 냄새가 난다고 야단들이다. 목욕을 해도 소용이 없다. 솔직히 나도 사람들 대할 때 눈치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내 일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불쾌한 냄새를 줄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미안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없지만 역한 냄새와 기계들의 소음소리로 내 일터는 솔직히 아츠럽고 형편없다. 하지만 모든 게 만족할만한 일터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이 모든 것을 참아낼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잘 참아낼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환경을 생각하고, 환경을 사랑하고,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내 고향에는 이름 있는 큰 화력발전소가 있다. 그리고 발전소에서 나오는 더러운 폐수는 불쾌한 냄새를 풍기며 내 고향 사람들의 터전인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간다. 지금도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선하다. 나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가 환경관리사로 일을 할 것이다. 환경관리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향사람들과 선진기술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은 게 내 작은 바람이다.


미치지 않으면 절대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책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공부한다. 그리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자랑스런 일터로 향한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정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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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오지훈 씨를 전화로 만났습니다.  


CM1 타이푼 J_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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