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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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부 국제적인 랍치범 김정일, 첫 번째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김정일은 상당히 즉흥적이다. 어떤 때는 한참 연회를 하다가도 “야, 오늘은 남조선 영화 한편 보자.”고 한다. 그러면 공관 옆에 있는 영사실에서 영화를 본다. 김정일의 이런 성미 때문에 모든 근무자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이런 자리에서 보여준 영화가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라고 한다.



독재자 밑에는 독재자를 기쁘게 하는 것을 최상의 과제로 아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김정일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국내 애들만 데리고 연회를 하다 보니 재미없다고 해서 외국 녀자도 끌어올 계획을 세운다. 78년에 남조선 녀배우 최은희를 랍치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해설 : 최은희는 연회 때문에 랍치된 것이 아니다. 최은희를 랍치한 리유는 남조선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신상옥 감독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김정일은 북조선 영화가 뒤떨어진데 불만을 품고, 북조선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신상옥을 랍치하라고 지시했다. 신상옥은 행방불명된 최은희를 찾다가 같은해 홍콩에서 랍치되였다. 이것은 김정일이 직접 말한 것으로, 1983년 10월 19일에 김정일을 접견했던 신상옥.최은희가 목숨을 걸고 록음을 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록음 당시의 상황을 신상옥의 수기를 통해 다시 구성해본다.



신상옥 : 원탁을 중심으로 은희는 김정일의 오른쪽에 앉고 나는 그의 왼쪽에 좀 떨어져 앉았다. 자리에 앉자 30세쯤 된 남자 접대원이 뚜껑 덮인 유리컵에 사이다를 가져왔다.



김정일 : 자, 우리 여기서 한 시간만 담화하고 저녁식사나 같이 합시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두 분을 만나자구 한 거는, 사업을 착수하기 전에 꼭 만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신상옥 : 드디어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고 처음 연회장에서 마났을 때와는 달리 좀 흥분했는지 마치 싸우는 사람 목소리 같았다. 은희는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핸드백을 발 밑에 내려놓고 손수건을 꺼내는 척 하면서 록음기의 단추를 눌렀다.



최은희.신상옥 부부도 연회에 자주 불려갔었다. 연회 중간에 김정일이 최은희.신상옥 부부와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도 있다.



외국에서 녀자를 데려오는 일은 련락부에서 전담했다. 정경희 부장이 책임자인데, 76년인가 77년에는 윤정희를 데려오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련락부 공작원들은 외국에서 녀자들을 살짝살짝 데려왔다. 여자들을 돈으로 유혹하거나 관광을 시켜 준다고 하면서 데려오기도 한다. 이렇게 꾀어 온 녀자들을 자기 나라에서 출국하게 한 뒤 모스끄바 등 중간 경유지에서 위조려권으로 조선에 데려온다. 녀자의 나라에서는 출국한 사실만 나타난다.



그렇게 평양에 데려온 녀자들은 태국, 필리핀 출신들도 있었고, 아랍 출신들도 있었다. 레바논 녀자도 있었고, 일본 녀자, 유럽 녀자도 있었다.



해설 :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증언이 있다. 최은희는 랍치되여 평양 동북리초대소에 갇혀 있을 때 마카오 녀자를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한 인권 단체에서 이 녀성을 추적한 결과 마카오의 한 호텔의 보석상점에서 근무하다가 1978년 7월에 랍치된 공영앵이라는 녀성이었다. 최은희는 자신의 수기에 ‘공영앵이 외국에 파견할 녀자 공작 원들에게 중국말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것도 확인됐다. 대외정보조사부 출신 공작원 김현희가 2009년 2월 한 언론을 통해서 이런 말을 했다. 참고로 김현희는 김정일의 친필지시를 받고 1987년 남조선 비행기를 폭파시킨 인물로 현재 남조선에 살고 있다.



김현희 : 이때 저에게 중국어를 가르친 여성은 저보다 나이가 다섯 살 정도 많은 ‘공가’ 성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중국 미인이었습니다. 마카오에서 랍치되어 왔다고 들었습니다. 북조선으로 랍치되어 와서 갇혀 있던 중 달아났다가 다시 붙잡힌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최은희 동무가 수기에서 만났다고 한 그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붙잡혀 온 지 오래되어서인지 조선말을 잘했습니다.



녀자들은 술집에서 일했던 종업원도 있었고, 학생으로 보이는 녀자도 있었다. 그들을 련락부 산하 초대소에 분산 수용했다가, 평양 남산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한 뒤 김정일의 연회에 참석시킨다. 한참 연회가 무르익기 직전 외국 녀자들이 들어와 김정일의 측근자 탁자에 한 사람씩 앉는다. 10명쯤 되는 숫자였다고 한다.



연회가 무르익어서 절정에 이르면 외국 녀자들이 나가서 알몸춤을 추었다고 한다. 외국 여자들 중에는 대남조선 녀자공작원에게 필요한 어학이나 예절, 춤을 가르치는 역할도 했다고 들었다.



녀자들 중에는 처음부터 계약을 하고 공식적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녀자들을 빼고 랍치해서 데려온 녀자들 중 돌아간 녀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약을 맺고 들어온 녀자들은 측근자 연회에 몇 번 참석한 뒤 돈을 받아들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돌아간 녀자의 한 사람인 일본 녀자가 자신의 조선 체험을 발표했다. 일본 잡지에 나왔다는데, 나는 남조선 월간지 ‘신동아’에서 읽었다.



해설 : 김정일은 남조선 인민들을 비롯해 외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랍치했다. 남조선 인민들은 약 500명, 외국인들은 확인된 숫자만 해도 12개 나라에서 40여 명을 랍치했다. 이렇게 랍치를 한 주된 리유는 간첩들을 현지인처럼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랍치행각은 김정일의 입으로 일부 확인이 됐다. 김정일은 2002년 조.일 수뇌 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일본인 랍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100억 딸라의 보상금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인정을 한 것인데, 분노한 일본 인민들의 반발로 돈도 받지 못한 채 랍치범으로 락인만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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