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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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부 윁남인민들의 삶의 변화

개혁개방의 기적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7-28 15:19




[앙 띠 띄엔, 농부]

“요즘은 협동농장에서 일했을 때보다 더 풍작이에요.”



[응엔 띠즈엉, 농부]

“우리집 같은 경우도 수확이 늘었어요. 1모작할 때 수입이 3이었다면 지금은 6이에요.”



도이모이의 가장 혁명적인 조치는 농업개혁이었다. 윁남 정부는 1988년 1월, 토지법을 제정했다. 토지의 소유권은 국가가 갖되 농민개인에게 장기사용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토지개혁 이후 농민들은 사유재산이 생겼고 이는 돈을 벌어야 할 리유가 됐다.



[응엔 띠즈엉, 농부]

“옛날에도 부모님은 돈이 많이 없었고 지금 우리도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지만 노력해서 애들을 학교에 보내니까 미래가 있고, 희망적이에요.”



윁남은 전체인민의 약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1975년 협동농장을 실시할 당시에는 쌀 생산량이 급속히 떨어져 쌀 부족사태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개정된 토지법이 시행된 지 2년만인 1990년부터, 윁남은 쌀 수입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냈다. 그리고 현재 매년 7억 딸라 이상의 쌀을 수출하면서 태국과 쌀 수출 1위의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리고 있다.



윁남의 메콩델타 삼각주는 상류에서 흘러온 비옥한 흙이 오랜 세월동안 쌓여 이루어 곳이다. 이곳의 쌀 생산량은 전체 윁남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메콩델타 삼각주의 한 곳인 빈타이에서는 900여 농가가 3,000ha의 논농사를 짓고 있다. 한 농가당 3.3ha가량 재배하는 셈이다. 이들은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 덕분에 연 3모작을 한다. 각 농가들은 파종이나 수확 이외에 큰 일손을 들이지 않고 농사를 짓는데, 1ha당 5톤의 벼를 수확하게 된다. 거기다 4월, 8월, 12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수확하게 되면 1년에 1ha당 15톤의 벼를 생산한다. 윁남은 2008년 740만ha에서 3,600여만 톤의 쌀을 생산했고, 이중 14%가량인 500만톤을 수출했다.



싼터, 띠엔랑, 롱안 등 윁남 남부에서 생산된 쌀들을 메콩강 인근에 위치한 식품회사를 거쳐 세계각지로 팔고 있다. 식품회사에 도착한 쌀들은 낱알의 무게와 굵기를 재고 건조 상태를 측정한다. 상인과 식품회사 직원들은 서로 실랑이를 벌이며 쌀 가격을 책정한다.



[깐, 쌀 납품업자]

“이번엔 이익이 없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창고주인의 지나친 요구에 60동이나 깍아줬거든요. 오늘이 벌써 6일째인데 60동이나 깎아줘서 남는 게 없을 것 같아요.”



남는 게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도 상인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중간상인으로부터 넘겨받은 쌀은 방아를 찧어 다시 포장하면 상품이 된다. 싸라기 함유량 등을 고려해 품질을 평가한 후 수출용은 수출회사로 판매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소비한다.



쌀이 풍부한 윁남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쌀을 이용해 각종 식품을 만들고 있다. 쌀국수와 죽, 누룽지, 쌀종이 등 다양한 쌀 음식이 윁남 전역에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퍼Pho’라고 불리는 쌀국수다. 바쁜 아침 간편한 아침식사나 출출할 때 가볍게 배를 채우는 간식으로 즐겨먹는다. 윁남의 쌀국수는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다양한 맛과 형태로 개발되면서 세계 곳곳에 쌀국수 음식점이 운영되고 있다.



[효과: 메콩강 상인들 장사하는 소리]



윁남 인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터전 중 하나가 바로 메콩강이다. 거대한 물줄기가 아홉 개의 길이로 갈라지며 윁남의 남부를 적시고 있다. ‘윁남’ 하면 거대한 강 위에 길죽한 배를 타고 전통모자에 전통복장 아오자이를 입고 긴 막대기로 강을 타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윁남과 메콩강은 뗄 수 없는 사이다. 윁남 인민들은 강 위에서 먹고 자고 장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윁남 남서부 하오찌앙주에 위치한 깐터. 메콩삼각주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깐터에서 배를 타고 20분을 가면 강위에 벌려진 수상시장, 만나게 카이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윁남 남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매시장이다. 배들은 모두 긴 막대기를 배 위에 세워두고 막대기 끝에는 과일, 채소 등의 농산물들을 매달아놓는다. 멀리서 봐도 배에서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알게 한 것이다. 이 수상시장은 농민들이 물건을 교환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도매상인들은 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 다른 시장에 가져다 판다.



[바노, 야채도매상)]

“이 일을 한지 20년 됐어요. 한번에 10,000kg을 뽑아서 시장들을 돌아다니며 배달하죠.”

[호민 티 메이]

“이렇게 한 배를 다 팔면 기름 값 빼고 10여만동 정도 벌어요. 5일간을 꼬박 이렇게 다녔는데 집에 안가요.”



10만동이면 5딸라가 조금 넘는 돈이다. 모든 것이 배를 통해 이뤄지다보니 색다른 풍경도 눈에 띈다. 먹는 물, 식료품, 가재도구 등 상인들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배에서 판매된다. 가장 바쁜 아침시간, 식사를 거른 상인들을 대상으로 고기 넣은 빵을 파는 배도 있다.



[상인과의 대화]

“어느정도 팔아요?”

“100개정도 팔아요. 2~3만동씩 벌어요.”

“빵 장사만 해요?”

“네. 그래요. 빵 장사만 해요.”



이곳에서 양파를 파는 마흔 살의 ‘뜨엉’씨. 10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 아내와 아이, 처재와 함께 배위에서 생활한다. 한 달에 500만동, 약 262딸라 정도가 필요하다. 배 한쪽에는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배 안에 있는데 심지어 조상을 모시는 제단까지 한쪽에 마련되어 있다.



[뜨엉씨 부인]

“지금 돈을 열심히 벌어서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면 학교에 보내 주고 싶어요. 집에만 있으면 나중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돈이 없어요.”



[뜨엉]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할 거예요. 아이들이 자라면 큰애에게 먼저 일을 가르칠 겁니다. 아이들을 먼저 학교에 보내고 나중에 더 크면 애들 중 한 명은 일을 시킬 것이고요. 아빠를 본받아야 해요.”



심한 바람에 배가 전복될 위험도 여러 번 있었지만, 뜨엉씨 가족을 지켜준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불과 30년 전, 전쟁 직후였던 당시, 이곳 수상시장터는 말 그대로 폐허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도이모이정책이 시작되면서 폐허의 땅에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수상 시장 우에서 부지런한 일손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그들에게 이제 더 이상 전쟁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20여 년의 혹독한 세월을 이겨낸 인고의 강, 메콩강. 메콩강에는 지금 개혁개방의 풍요로움이 흐르고 있다.



‘개혁개방의 기적’, 제9부 ‘윁남인민들의 삶의 변화’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10부 ‘윁남의 건설현장’편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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