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의 기적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제8부 윁남의 선택, 도이모이 정책

개혁개방의 기적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7-28 15:19




[효과: 윁남 전쟁]



1973년 1월 27일, 전쟁이 비로소 끝났다. ‘윁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면서 미국과 윁남은 기나긴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북측 윁남에서만 90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75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미국군 사망자는 22만 명이 넘었고, 사상자는 75만 명이 넘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폭탄이 터졌던 이 전쟁은 윁남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1975년 윁남의 공산화 통일에 성공한 혁명 1세대 지도부의 정치적 구호는 독립과 혁명완수였다. 1985년까지 10년 동안 독립과 혁명의 구호를 내걸고 윁남 인민들을 끌어갔다. 공산혁명의 구호 아래 캄보디아를 침공했고, 독립의 구호 아래 중국과 전쟁을 벌였다. 경제적으로는 북윁남의 경제정책을 해방지역인 남윁남에 그대로 적용하였다.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국가 배급제를 실시했다. 그 결과 150여만 명에 달하는 남윁남 사람들이 나라를 떠났다. 물건 값은 매년 아홉 배씩 뛰었고, 인민 1인당 소득은 125 딸라로 떨어졌다. 통일 윁남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음악전환]

1986년 12월, 윁남은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변적인 조치를 발표한다. 바로 ‘도이모이’정책이 그것이다. 도이모이라는 말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윁남어다. 같은 해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구엔 반 린이 강력하게 밀어부친 정책이었다. 도이모이 정책의 기본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외개방을 실시해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윁남 경제를 살리고 인민 생활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정책이었다.



대내적으로는 개인 사업을 허용하고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이 분배했다. 이와 같은 조치를 바탕으로 1986년 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시작했다. 1987년에는 ‘외국인 투자법’을 제정했다. 윁남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해 줌으로써 대외개방에 속도를 붙이기 위한 조치였다.



도이모이의 결과는 1987년부터 서서히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년 아홉배에 이르던 물건 값 상승률이 0.3배로 뚝 떨어졌다. 경제성장률도 5~6% 수준으로 향상되다. 125딸라에 불과하던 인민 1인당 소득은 2백 딸라까지 올랐다. 외국인 투자도 점차 늘어 1990년 홍콩, 대만, 오스트랄리아, 프랑스, 카나다, 일본 등 30여 개국이 24억 5천만 딸라를 윁남에 투자했다.



[배경음향: 윁남 상가 거리]

“도이모이 정책은 우리의 희망이요 생명이다. 다함께 땀 흘려서일하자”, 1990년대 초 윁남 전국을 뒤덮었던 구호다. 그 바람이 20년이 지난 지금, 눈에 띄게 보이고 있다. 특히 수도 하노이와 호치민시 등 주요 도시에서는 과거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윁남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도 시내 곳곳은 도로바닥 공사부터 백화점과 호텔, 아파트, 교량 등 대형 건설공사까지 크고 작은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모습이 달라지는 윁남 거리의 주민들은 얼굴 가득 활기와 웃음을 보이고 있다.



(해설)

도이모이정책의 가장 큰 성과는 쌀생산의 증가이다. 1982년까지만 해도 윁남의 절대빈곤자의 비률은 58%에 달했다. 인민의 절반 이상이 굶주렸다는 말이다. 당시 인민들은 배급받은 쌀로 죽을 만들거나 감자 같은 것을 섞어 먹었다. 그마저도 실컷 먹을 수 없어 배고픔에 허덕여야 했다. 어쩌다 닭이라도 한 마리 잡는 날이면, 집밖으로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온 가족이 달라붙어야 했다. 온 가족이 닭고기를 먹는 날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지금 윁남의 절대빈곤자 비률은 14%로 낮아졌다. 도이모이 정책이 시작된 이후 윁남은 결국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 100에서 200 딸라에 불과했던 윁남의 인민 1인당 소득은 2008년 현재, 1천 24딸라에 이른다. 윁남은 비로소 가난한 나라의 대열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중국, 태국과 이어 최대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일본 태국 대만 등 1백여 개가 넘는 우수한 외국 기업들이 윁남에 진출해 윁남의 생산력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윁남은 지금 연평균 7~8%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어가며 ‘아세아의 새로운 용’으로 떠오르고 있다.



[효과: 오토바이 소리]

윁남 인민들의 활력은 매일 아침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 행렬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윁남 최대의 경제도시인 호치민시, 이곳의 아침은 사이공강을 건너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과 오토바이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2005년까지만 해도 윁남의 거리는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탄 여성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전통의상은 간편한 서구식 복장으로,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호치민에서 하루에 보는 오토바이 숫자가 다른 나라 사람이 평생 볼 오토바이 수보다 훨씬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윁남의 오토바이 물결은 거대하다. 윁남의 아침을 뒤덮는 거대한 오토바이의 물결은 오늘날 윁남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치민시는 윁남 개혁개방의 대표적인 시험장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윁남 정부는 대만의 자본과 경험을 끌어들여 호치민시에 공업단지를 만들었다. 윁남에 있는 80여개의 공업단지 중 가장 먼저 건설된 호치민시의 탄투안 공업단지에는 현재 외국 기업이 90%에 달한다. 이 공업단지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수만 해도 4만 명이 넘는다. 공업단지 일꾼들의 한달 노임은 180에서 250동, 대략 95~105딸라 정도다.



[방운제 / 대만 기업]

“1989년 투자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윁남에 왔었습니다. 그때 윁남 정부가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윁남 사람들은 똑똑하고 성실합니다. 그리고 자원이 풍부합니다. 윁남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곳이 30년 전의 대만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설)

또 다른 공업단지 빈쯔엉. 외국인 투자유치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이곳에 자리잡은 남조선 기업 성현무역은 고급신발을 생산해 전량을 유럽으로 수출한다. 일꾼의 수는 3천명이 넘는다. 그 중 남조선 일꾼은 20여명에 불과하다. 이 기업은 윁남에 진출한 지 6년 만에 2500만 딸라의 매출을 달성했다. 진출 첫 해에 비해 10배 이상 성장했다. 성현무역의 이영만 사장은 윁남의 가능성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이영만 사장 / 성현기업]

“윁남이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은 종업원들이 상당히 근면하고 성실하고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존심도 세고 그러다보니까 앞으로 이 나라가 상당히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나라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윁남은 외국인들의 투자유치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빈쯔엉 공업단지가 있는 빈쯔엉성은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각종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응웬 호엉 / 빈쯔엉성 장]

“윁남의 현재 상황은 경제 발전 가능성에 있고 외국투자를 유치하는 여건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우리 성 뿐만 아니라 전국의 발전방향은 다양한 분야에서 특히 산업부문에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고 2020년까지 윁남이 농업구조에서 완전히 산업화된 국가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2007년 윁남의 외국인투자 규모는 8천166건에 747억 6천만 딸라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윁남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향후 5~6년 동안은 더욱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윁남 경제를 발전시키는 외부 동력이 외국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윁남에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내부 동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체제, 둘째 인민의 70%가 30살 미만의 젊은 층이란 점, 셋째, 풍부한 천연자원와 동남아세아를 아우르는 좋은 위치이다. 도이모이 정책 실시 이후, 30년 동안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된 윁남. 10년 후 윁남의 모습이 더 궁금해진다.



‘개혁개방의 기적’, 제8부 ‘윁남의 선택, 도이모이정책’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9부 ‘윁남인민들의 삶의 변화’ 편을 보내드립니다.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