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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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활력 넘치는 중국

개혁개방의 기적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7-28 15:19




[효과] 2010′ 상해 엑스포 준비 현장



중국 제1의 상업도시 상해. 상해는 지금, 엑스포 준비가 한창이다. ‘엑스포’는 150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세계 박람회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에 속한다.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우수한 문화예술품과 최고 품질의 상품을 전시한다. 이 때문에 경제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세계 박람회는 한마디로 인류가 이룩한 과학적, 문화적 성과를 전시하고,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세계인의 축제다. 중국 정부와 상해시, 상해 인민들은 지난 2002년부터 력대 최고의 세계박람회를 꿈꾸며, 막바지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0 상해 엑스포’는 오는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186일 동안 열린다. 총 30억 딸라가 투자된다. 현재 5km²(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넓은 땅 우에, 각 나라들의 전시관이 건설됐다. 박람회에는 미국을 비롯한 192개 나라가 참가한다. 방문객 수만 해도 7천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박람회에서 18억 딸라를 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엑스포 기간, 중국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벌어들일 관광수입은 예측이 어려울 만큼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상해 박람회 조직위원회 서위 홍보부장의 말이다.



[서위 홍보부장-상해 박람회 조직위원회]

“상해엑스포는 상해에서 개최되지만 세계적인 강대국인 중국이 유치했기 때문에 굉장히 큰 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상해 엑스포를 통해 많은 국가와 주민들이 상해를 알게 될 것이고 상해 주민들도 세계를 알게 되어 개방의 효과는 물론 상해가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중국은 지난 2008년 북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세계 인민들은 중국이 보여준 노력과 잠재력에 놀랐다. 올림픽 이후 중국 제품에 대한 세계인민들의 인식이 좋아졌고, 그 때문에 수출도 크게 늘었다. 중국 인민이 이번 상해 엑스포까지 완벽하게 치러낸다면,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것이 틀림없다.



북경과 상해를 비롯한 중국의 도시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1978년, 최초로 개방된 심천, 주해, 하문, 산두 등 4대 경제특구는 말할 것도 없고, 1982년에 추가로 개방된 대련과 천진 등, 동부 연안 14개 도시들도 급속하게 발전했다. 지금은 심양, 장춘, 단동과 같은 각 성의 주요 도시들까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시민들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하고, 도로와 건물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이룬 성과와 변화를 세상 사람들은 천지개벽이라고 평가한다.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 동안 중국의 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9.8%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은 개혁개방 직후보다 예순여덟배나 커졌다. 1인당 인민소득은 무려 198배나 늘었다. 중국이 가진 외국돈은 2억 딸라에서 2조 딸라로 만 배나 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외화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경제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개혁개방의 물결은 도시 뿐 아니라 농촌에까지 밀려들었다. 30년 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농민들의 수는 2억5000만 명이나 됐다. 농민 1인당 수입은 134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농민은 거의 사라졌다. 농민 1인당 수입은 4,140원으로 개혁개방전과 비교해 삼십배 가까이 늘었다. 년간 식량생산량은 5억톤 넘었고, 육고기 생산량은 7000만 톤이 된다.



2008년 10월, 중국 국가주석 호금도는 안휘성을 찾아 이런 말을 남겼다.



[호금도. 중국 주석]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민 수입을 증가시켜 농촌 번영을 돕겠습니다.”



당시 호금도 주석이 특별히 안휘성을 찾아 그와 같은 포부를 밝힌 리유는 무엇일까?



1978년.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선언하던 바로 그 해였다. 안휘성의 한 시골마을에서는 열여덟 가구 농민들이 모여 비밀계약을 맺었다. ‘경작지를 가구별로 나누고 생산책임을 각 가구에 맡기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중국이 시행하던 집단 생산제 방식에 어긋났다. 당이 시행하던 생산방식을 다른 생산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었다. 농민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당의 방침과 다른 생산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등소평은 농민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농민이 국가로부터 토지를 빌려 생산량의 일부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농민이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안휘성 방식을 전폭 지지하고,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것이 바로 대포간 제도다. ‘대포간(大包干)’ 제도는 중국경제에 처음으로 도입된 자본주의 요소였다. 대포간은 중국 전역에 개혁과 개방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안휘성에는 대포간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호금도 주석이 안휘성을 찾은 것은 농촌개혁을 국가의 전면적인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지도부는 2004년부터 농업문제를 최우선 정책과제인 1호 문건으로 채택하고 빈부 간,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국의 농민들에게 연간 127억 위안의 장려금을 지급하고, 2000여년 이상 지속돼 온 농민세를 완전히 폐지했다. 2008년부터는 농민들에게 토지경작권을 사고 팔 수 있게 했다. 토지 사용 시한도 30년에서 70년으로 늘렸다. 국가에서 빌린 토지를 이용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2009년 중국 농민들의 연간 소득이 5천 위안을 넘어섰다.



지금 중국인민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친다. 그들의 눈빛은 중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빛나고 그들의 입가에는 행복한 웃음이 묻어나고 있다. 중국의 남동쪽 항주의 밤거리에서 한 시민을 만났다. 동료들과 술을 한잔 기울이던 그는 지금 자신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카이 / 밤거리 시민 인터뷰]

“집을 사는 건 지금 저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젊었을 때 이미 집을 한 채 사두었거든요.

일하는 것이 즐겁고 친구들과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 삶은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평범한 중국 인민이 ‘행복하다’는 말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건, 력사적 사변이 아닐 수 없다. 대약진으로 수천만명이 굶어죽고, 문화혁명으로 온 나라가 투쟁과 혼란으로 망해갈 때, 중국은 개혁개방을 선택했다. 개혁개방은 중국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눈부신 경제발전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중국인민들은 마음껏 일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음식과 옷과 집을 샀고, 일부는 나라에 바쳤다. 중국 최대 경제 도시 상해의 1인당 인민소득은 이미 만 3천 딸라를 넘었다. 이제 중국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헌신적인 자세와 우수한 지도력으로 무장한 중국 지도부와 낙천적이고 근면한 인민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 밝고 희망찬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중국 인민의 마음에는 자신감과 희망이 넘치고, 중국 전역에는 활력이 넘친다.



‘개혁개방의 기적’,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 ‘활력 넘치는 중국’편을 보내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 3부 ‘세계 속의 중국’편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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