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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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여덟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4-25 17:46


이름은 김숙희가 사용하려든 빠이추이후이로 하고 경력은 우잉의 것으로 사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과 경력을 따로따로 사용하면 제아무리 철저하게 추적해도 찾아낼 수가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제일 어렵고 힘든 문제가 결정되자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남조선 려객기 폭파 사건에 대해서는 절대로 관계없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 나니 기운도 좀 나고 희망감도 생겨났다. 건강도 빨리 회복되는 듯했다. 몸이 많이 회복되자 간호사들은 우유로 된 즙을 입에 처넣다시피 억지로 먹였다. 나는 별 저항 없이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 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들은 나를 일으켜 앉히고 얼굴을 닦아 주고 머리를 빗겼다. 푸른색 환자복으로 갈아 입힌 후 밀차(휠체어)에 태워 밖으로 끌고 나갔다. 밀차에 태울 때는 수갑을 채워 밀차에 련결시켰다. 병실 내에서도 화장실 갈 때는 수갑 한쪽을 여자 경찰 손목에 채웠고 간호사는 내 팔을 부축하면서 꼼짝할 수 없게 했다. 창피스러운 이야기지만 용변을 보는 일도 여자경찰과 함께 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한 손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간호사가 휴지를 떼어서 전해 주곤 했다.



정말 살다살다 별꼴도 다 본다는 식의 일들이 나에게 나날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철두철미한 감시는 내가 생각해도 대단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기회만 있으면 자결하리라는 속마음을 이미 훤히 읽은 듯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밀차에 실려 밖으로 나오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눈이 너무 부셔서 눈을 감아 버릴 정도로 쾌청한 날씨였다. 밝은 햇살이 유리 파편마냥 눈을 찔러대는 통에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얼마 만에 보는 바깥 풍경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아마 정오쯤 되는 것 같았다. 맑디 맑은 날씨를 대하며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온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캄캄한 심정으로 나날을 보냈는데 바깥 세상은 예나 다름없이 여전히 찬란한 풍경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절망에 젖어 있는 내 위치와는 무관하게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변해 있는 것은 나뿐임을 깨닫고 나니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뚝 떨어져 나온 것 같은 소외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밝고 환한 햇살이 나에게 안겨준 것은 래일에 대한 희망이 아니었으며 더 캄캄한 절망감뿐이었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남들은 다 이 밝고 명랑한 천지에서 마음껏 활보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어두컴컴한 땅 속에 묻힐지, 햇빛 하나 없는 감옥에서 보낼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밀차에 태워진 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남자 경찰들이 달려들어 내 얼굴에 바레인 사람들이 터번으로 사용하는 붉은 격자 무늬의 수건을 씌웠다. 그런 다음 번쩍 안아서 차에 쓸어넣고는 양 옆에서 팔짱을 끼어 꼼짝 못하게 붙들었다. 붉은 수건을 둘러씌우는 순간 나를 처형장으로 끌고가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으로 몸을 떨었다.



기회만 있으면 자결하리라 하던 이성적인 생각과는 달리 죽는다는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았다. 두려움 끝에는 슬픔이 밀어닥쳤다.



차는 시내를 지나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얼마를 달리다가 몇 번 모퉁이를 돌더니 높은 울타리가 처져 있고 경비가 삼엄한 1층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옆에 앉아 있던 경찰이 수건을 벗겨 주며 ‘폴리스 오피스’라고 작은 소리로 가르쳐 주었다. 내가 들어간 방은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방 분위기를 보는 순간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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