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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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쉰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4-04 18:06


짧은 휴가가 끝나고, 해외 생활로 해이해진 생활방식과 사상성을 높이기 위해 약 9개월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고된 훈련 기간 중 4.15휴가를 받아 역시 2박 3일간 집에 다니러 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술에 취해 나를 데려간 지도원에게, “내 딸은 언제 시집보낼 거요?”하고 항변하여 지도원을 당황케 하였다. 나 역시도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내가 중앙당에 소환된 후 첫 휴가를 받아 갔다가 돌아오던 날도 어머니가 지도원을 붙들고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현희를 언제쯤 돌려주나요?”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면서 눈물까지 보였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도원은 로골적으로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혁명가 어머니가 그렇게 나약해서 원......그러면 딸이 어떻게 큰일을 하겠는가?” 하고 혀까지 찼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무안해서 안절부절 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왜 가식이라도 지도원 앞에서 강하게 보이지 못하는가 하고 섭섭했고, 자식까지 있는 지도원이 그것도 이해 못해주고 비판하는 것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 내게 이번에는 아버지가 지도원에게 항의를 하니 어쩔 줄을 몰랐다. 더구나 아버지는 나에게도 그전 같지 않게 매정하게 대했다. 눈길도 마주치려 하지 않고 나와 말도 하지 않으려는 듯 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전 같으면 ‘우리 큰 딸이 이제 어른이 다 됐구만.’ 하고 맞장구 칠 일도 쌀쌀맞게 고개를 돌려 버리거나 내가 있는 방을 나가 버리시기도 했다.



아버지의 돌변한 태도가 초대소에 돌아와서도 못내 마음에 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잠 자유주의로 초대소를 빠져나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에게 따졌다.



“아버지, 내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마음에 안 드시는 게 있으면 속 시원히 말씀하시지 왜 저를 피하십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괴로운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이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나는 그 제서야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초대소로 돌아갔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 5월 달에 지도원이 하루 휴가를 주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파 누워 있던 범수에게 주려고 마카오에서 샀던 록음기와 나일론 단복을 싸들었다. 범수가 머리맡에 놓인 조선제 단복이 너무 커서 입어보지도 못한 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잘 대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지도원은 집 앞에 와서야 동생 범수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집에 가보니 범수가 죽어 장사를 치른 지 며칠이 지나 있었다. 나는 범수에게 주려고 가지고 간 단복과 록음기를 내려놓고 울음을 터뜨렸다.



범수는 만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범수와는 가장 짧은 시간을 생활했지만 워낙 나이 차이도 지고 큰 누나를 존경하여 자식 같은 마음이 드는 관계였다. 잘 생기고 총명하더니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범수의 일이 있고 겨우 마음이 좀 진정되었을 때 나는 개성에서 외할머니가 8개월 만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유주의로 집에 다니러 갔다가 현옥이 남편의 부음을 들었다.



9월에 나는 왼쪽 어깨에 나 있는 결핵예방접종 흉터를 없애는 성형수술을 해준다고 하여 9.15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수술이 잘못돼 흉터만 더 커져 입원 기간이 길어졌다. 이때 중국 광주로 가라는 지령을 받았다. 리 지도원이 병원으로 찾아와, “급한 일이 생겼으니 퇴원해야겠소.” 하며 미처 다 회복하지도 않은 나를 퇴원시켰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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