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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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마흔 아홉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3-30 16:55


초대소에 들어와 꽃다운 시절을 다 보냈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질 때도 있었다. 동무들 생각, 가족 생각이 들 때는 아예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나자빠지고 사회에 나가 속 편하게 시집이나 가버릴까 하는 마음도 가져보게 됐다. 숙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면 서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는데, 무슨 신통한 대답을 들으려는 것보다는 위안의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하고 숙희에게 물으면, 숙희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다.



“너? 너는 일어 전문이니까 일본으로 갈 게 틀림없어. 간부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봐도 알 수 있잖아.” 나는 그 말이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가끔 여자들끼리만의 아기자기한 대화도 나누는 유일한 말동무였다.



“넌 어떤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니?”

“음....김혁이 같은 남자..”



기껏해야 우리들의 학습 교재로 읽은 책 속의 등장인물이나 생각해내는 정도였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음대로 결혼을 꿈꿀 자유란 있을 수도 없었다.



외국에 나가서 1년 반씩 살다 왔어도 어머니는 내생활을 잘 알지 못했다. 변한 내 모습과 들고 간 선물을 보아 대충 짐작만 할 정도였다. 아예 그러려니 하고 어딜 다녀왔느냐고 묻지도 않았고, 혹 어머니가 물어 와도 나는 그냥 “어디 좀....” 하며 대답을 피했다.



지난번 휴가 때 팔이 아프다던 범수는 이젠 아예 앓아누운 형편이었다.



“피부암이라는구나. 얼마 살지 못할 거래.”



나는 범수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의 어둡던 표정이 나 때문만은 아님을 알았다. 나는 범수 곁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범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 앓고 있으면서도 큰누나가 반가워서 내가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저번 휴가 때보다 너무 많이 악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우울한 집 분위기 속에서도 휴가는 너무나 짧았다. 결혼을 앞둔 현옥이와 더 의젓해진 현수, 피부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 범수, 그 모두가 나에게 좀 더 따뜻이 대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나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손님이 된 자신을 깨달았다. 초대소가 내 집이 된지 오래였다.



휴가가 끝나고 초대소로 돌아오자 리 지도원은,



“동무들은 그동안 해외 생활 등으로 해이해진 생활 방식과 사상을 버리고 다시 우리 생활에 습관되도록 강도 높은 학습을 하여야 한다.” 하고 지시했다.



이때부터 리 지도원의 지도에 따라 집중적으로 정치사상 학습을 받았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서적을 읽고 이에 대해 토론하고 주요 부분을 암송해 나갔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지도원이 강의하고 생활총화도 세게 했다. 연말이 되면 정치사상 학습, 사격, 어학 등에 대한 판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격은 권총으로 300여발의 실탄 사격을 했으며, 수영은 석암저수지에서 열흘간 맹훈련을 했다. 행군도 매일 야간 4km, 토요일에는 20km씩 했다. 무전 수신 훈련도 계속해서 분당 18조 이상을 수신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 나갔다.



1987년 6월에는 사상성을 더 높이기 위해 열흘간 함경북도 지역으로 김일성의 왕재산 혁명 사적지와 전적지를 답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해외 생활에서 해이된 사상성을 재무장하기 위한 훈련을 약 9개월간이나 받았다. 그전에는 미쳐 고달프게 느끼지도 못했던 정신적 고통이 뒤따라 그것이 바로 해이해진 사상성 때문이 아닌가 하여 더 집중하려 노력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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