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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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서른 한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6-15 17:43


이들은 무엇이든 조선말로만 집요하게 물어왔다. 그들이 조선말로 말할 때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면서 일체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조선 말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크나큰 장애물이 될 줄은 몰랐다.



조선 말에는 내가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 않자 옆에 있는 여자가 오히려 답답해 했다. 그녀는 다른 자리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의 일본말로 나에게 또 말을 걸었다. 금방 자기네 간부가 일본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를 어기면서까지 나하고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다. 남조선 특무들은 규율이 좀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지금쯤 비행기는 어디를 날고 있을까? 조국에서는 내가 이렇게 남조선으로 끌려가도록 방치해 둘 것인가? 빨리 손을 서서 이 비행기를 통째로 날려보내면 비밀도 영원히 덮어지고 나 역시 고통 없이 끝날 텐데.....’



머릿속으로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전혀 미동도 없이 눈을 감은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다리를 의자에 올려주어 자세를 편하게 해주었다. 바레인 공항에서 자살하려다 다친 무릎이 아직도 낫질 않아 다리를 들어 올릴 때는 너무나 심하게 아팠다. 나도 모르게 “아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입을 막은 플라스틱 물건이 없었다면 나는 조선 말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다행히 플라스틱 때문에 그냥 신음소리로만 들렸을 것이다.



간부가 자리를 비웠는지 내 곁의 여자와 남자는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진보다 훨씬 낫죠? 사진에서는 좀 이상했는데...”

“대단한 미인이야. 그런데 왜 눈썹을 밀었을까?”

“녹색 옷을 입으니까 더 멋져 보이는 것 같애.”

“이렇게 몸이 좋은 애가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했다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나이는 안 들어 보여요. 머리 파마가 참 멋있게 됐네. 어디서 했을까?”

“팔을 보면 피부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들은 너무 쓸데없는 여유작작한 소리들만 지껄이고 있었다. 아니 지금 비행기 폭파범이라고 믿는 상태에서 나를 끌고 가는 마당에 이렇게 여유있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싶었다. 그 한가한 분위기와 그들의 대화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 북에서 같으면 이처럼 큰일을 수행하면서 긴장된 분위기를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호된 비판을 받는다. 또 이들이 ‘미인’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북에서는 미인이라면 양귀비나 춘향이 정도의 절세미인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생소하고 이상스럽게 들렸다.



나는 나 자신이 미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그들의 말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벌써부터 여자의 약점을 노려 일부러 나를 추켜세우면서 작간을 부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절대로 그따위 미끼에는 걸려들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도 해 보았다. 얼마쯤 지나 간부가 와서 또 지시를 내렸다.



“얘가 거기서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고, 또 어제 저녁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군. 저대로 지쳐서 안 되겠어. 포도당 주사를 놔주도록 해.”



나는 뒤쪽 칸막이가 있는 방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병원 수술대 같은 침대에 눕혀져 포도당 주사를 맞았다. 포도당이라는 말이 정신을 잃게 하여 자신도 모르게 모든 걸 술술 말하도록 하는 주사약의 암호로 들렸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도 사진기 후레쉬가 계속 터졌지만 주사바늘을 꽂은 상태에서도 사진을 찍는 데는 수치심이 있는 데로 솟구쳤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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