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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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부 수용소에 간 나의 첫사랑 리화, 첫번째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모스끄바 유학시절 여름방학에는 평양에 갔다. 80년 여름방학 때의 일인데, 어느 날 관저의 담당에게 얘기해서 고기, 과일, 당과류 등을 몇 지함 준비해서 희주 이모 집에 놀러갔다. 희주 이모는 신의주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사가면서 원래 살던 경림동 문화인 아빠트를 이모에게 주었다.



일남 : 이모, 희주 이모. 일남이 왔습니다.



이모 : 아이고, 우리 일남이 왔구나. 그 사이에 훨씬 컸는데.... 얼른 들어가자.



일남 : 여기 이모가 좋아하시는 것 좀 챙겨왔습니다.



이모 : 아휴, 빈 손으로 오지. 하여튼 우리 일남이 덕분에 이모 입이 호강을 한다.



일남 : 야 오랜만에 집에 오니까 진짜 좋다! 변한게 하나도 없네. 근데 이모, 옆집에 리화는 잘 지내고 있나요?



이모 : 너 소식 못 들었니?



일남 : 무슨 소식이요?



이모 : 리화네 가족 모두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어.



일남 : 정말이에요. 아니 왜요?



이모 : 글쎄, 리화 아버지가 간첩질을 했다는 구나.



일남 : 에이, 성악가인 리화 아버지가 간첩은 무슨......



이모 : 나도 무슨 일이진 모르겠다만, 어쨌든 간첩이라고 보위부에서 나와서 가족들을 몽땅 싣고 갔어.



리화는 인민학교 시절 내가 짝사랑했던 녀학생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수용소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상의 지옥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리화 아버지가 간첩질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순간 리원범 전 체스꼬 대사가 머리에 떠올랐다. 리 대사는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돌아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것도 국가정치보위부 및 사회안전부 담당 부부장이었다. 더구나 김정일의 연회에도 참석하는 측근이 되어 있었다.



모스끄바에서 혜림이모는 “체스꼬 여행할 때 보니까 리원범 그 사람 괜찮더라.”는 얘기를 가끔 했었다. 옥돌이 누나 결혼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던 것 같은데, 리원범의 출세는 이모가 김정일에게 좋게 말해서 된 것이었다. 당시 김정일과 이모는 떨어져 살기는 했지만 사이가 좋았다.



해설 : 36부에 나와 있지만 성혜림의 딸 옥돌의 결혼식 때 리원범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옥돌은 성혜림이 전 남편에게서 낳은 딸인데, 성혜림은 김정일의 눈을 의식해 체스꼬에서 딸의 결혼식을 치러주었다.



나는 리원범 부부장을 만났다.



일남 : 부부장 동지! 경림동 문화인 아빠트에 살았던, 평양대극장 성악가인 김안이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 딸애 이름이 리화인데요, 간첩이라고 해서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지금 어떻게 됐는지 좀 알아봐 주십시오.



이틀 후 리원범 부부장에게서 련락이 왔다. 보통강변에서 만나자고 했다. 리 부부장이 좀 걷자고 했는데, 그런 고위직에 있는 사람도 도청될까봐 차 안에서 말을 못했다.



리원범 : 일남 동지, 김안이 그 사람은 간첩입니다. 잊어버리십시오.



일남 : 부부장 동지, 진짜 간첩이 맞긴 맞습니까? 솔직히 얘기해 주십시오. 당에 대해 불평불만이나 한 것을 간첩이라고 한 것 아닙니까?



리원범 : 사실은 불평불만을 하다가 간첩으로 몰렸습니다.



리 부부장에 의하면 리화의 아버지가 재일교포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당중앙을 비방하고 욕했다는 것이었다. 당중앙에 대한 불평불만은 간첩과 똑같이 취급하기 때문에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리원범 : 김안 그 사람이 술 먹고 실수한 거지만, 당중앙을 욕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일남 : 그러니까 간첩 임무를 받고 들어온 것은 분명 아니군요. 그럼 부부장 동지! 나를 봐서라도 한번만 빼주십시오.



리원범 : 지도자 동지의 비준까지 난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일남 : 부부장 동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건 데 빼주십시오. 리화는 나하고 단짝이었습니다. 그리고 리화네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도 잘 아시고 이모님도 잘 아십니다. 무조건 빼주십시오.



리원범 : 다른 일 같으면 어떻게라도 힘을 써보겠지만, 지도자 동지가 비준한 건이라 저도 어찌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일남 동지 리해해 주십시오.



그날은 소득 없이 헤어졌다. 한 사흘 동안 밤마다 잠이 안 왔다. 얼굴이 뽀얗고 귀공녀 같이 생긴 리화와 동생 리애가 수용소에 끌려 들어가 고생할 생각을 하니 잠이 올 수 없었다. 당시 나는 통제구역의 실상을 대충 알고 있었다. 최근 요덕수용소에서 나온 청년들이 폭로한 것처럼 벌레까지 잡아먹는다는 것은 몰랐지만, 살벌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기가 막혔다.



해설 : 정치범수용소는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완전통제구역과 일정기간이 지나면 심사를 거쳐 나올 수 있는 혁명화구역이 있다. 그런데 완전통제구역이 대부분이라 한번 수용소로 끌려가면 다시 사회로 나오기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현재 약 20만명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데, 조선 내부에서는 비밀이기 때문에 리일남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조차도 정확한 실상을 모를 정도다. 조선의 정치범수용소는 1990년대에 <함경남도 요덕 관리소> 출신인 강철환과 안혁, 그리고 <함경북도 회령 관리소> 경비병 출신인 안명철이 남조선으로 탈출하면서 그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들은 정치범 수용소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옥수수 한 그릇과 소금 한 숟갈로 14시간의 중노동과 채찍을 견뎌야 하는 곳. 도주하던 친구의 공개처형 된 주검 우로 침을 뺕고, 돌을 던지고 저주를 퍼부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 뱀이나 쥐를 잡은 날이 최고의 행운으로 되는 곳.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고통이고 치욕인 곳. 자신의 생명을 저주하게 만들어 버리는 곳. 이곳이 바로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북조선의 정치범 수용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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