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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특집대담 - 수령 독재를 계승한 김정은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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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2-16 17:56


사회 : 안녕하십니까? 정민재입니다. 오늘은 김정일 생일 70돌을 맞아 특집대담, “수령 독재를 계승한 김정은은 누구인가?”를 준비했습니다. 김정일이 죽고 나서 그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최고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민들은 김정은이 몇 살인지, 그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김정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자리에 리유정 해설원이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리: 네, 안녕하십니까?



사회 : 지금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선전이 한창인 데요 그에 대한 정보가 사실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지요?



리 : 네, 그렇습니다. 일찍이 김정일은 수령을 신격화해서 인민들 우에 군림하기 위해 자신의 가계에 대한 정보는 1급 비밀로 취급해 왔습니다. 남조선의 경우 최고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신상정보, 재산 규모까지도 공개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회 : 감출 것이 많아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떳떳이 밝히지 못한다는 말씀인데요, 북조선 인민들은 접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외부세계에는 김정은에 대한 정보가 약간은 공개돼 있습니다. 먼저 김정은의 나이부터 살펴볼까요?



리 : 네. 북조선 당국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선전하면서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청년대장’, 또는 ‘장군님의 아들’이라만 밝혔습니다. 그런데 2010년 당대표자회에서 공개된 김정은의 얼굴을 보니 20대의 앳된 얼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인민들은 ‘애송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이 때문인지 북조선 당국은 김정은의 출생년도를 조작했습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면 김정은은 1984년 1월8일 평양의 봉화진료소에서 태여났습니다. 그런데 북조선 당국은 1982년생으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김일성과 김정일과 함께 ‘꺽어지는 해’를 맞이하도록 하기 위해 조작한 것입니다.



사회 : 그러니까 김정은은 올해 29살이네요. 과거 김정일도 출생년도를 조작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수법을 쓰고 있는거죠?



리 : 네, 그렇습니다. 김정일은 1941년생인데, 김일성의 출생년도인 1912년의 끝자리에 맞춰 42년생으로 출생년도를 조작했습니다. 북조선 당국이 조작한 대로 한다면 올해 김일성의 생일이 100회, 김정일은 70회, 김정은은 30회가 되는 셈인데요, 일부러 맞추지 않는 한 이렇게 맞아떨어지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사회 : 북조선 당국은 주민들의 출신성분을 철저히 따지는데요, 백두혈통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김정은의 출신성분이 궁금합니다. 김정은의 어머니는 누구죠?



리 : 네. 김정은의 어머니는 김정일의 세 번째 여자인 고영희입니다. 고영희는 김정일이 가장 사랑했던 애첩으로, 김정은을 포함해 그의 형 정철, 녀동생 여정이를 낳았습니다. 고영희는 재일동포 출신으로 1962년 10살 때 귀국선을 타고 북조선에 들어와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습니다. 1970년대에 김정일의 눈에 띄어 기쁨조로 뽑혔고, 1975년경에 김정일의 비밀연회에서 그의 옆자리에 앉아 술시중을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1976년경부터 함께 살기 시작해 아들 두 명과 딸 1명을 낳고 살았습니다.



사회 : 북조선에서는 재일교포를 ‘째포’라며 낮춰서 부르는데요,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까? 김정은의 출신성분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네요?



리: 네, 그렇습니다. 사실 출신성분 같은 것은 없어져야할 봉건시대의 잔재인데요, 북조선 당국의 론리대로 한다면 김정은은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없는 출신성분을 가졌습니다. 재일교포들은 당의 내부 인사지침에 따라 당 일군, 사법, 외교, 항공, 해운 부문에 진출할 수 없습니다. 군대에서도 군관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이 예외적으로 당이나 내각, 군대에서 간부가 될 수 있지만 그 비률은 극히 적습니다. 이러다보니 재일교포들은 대개 경제나 기술, 예술과 체육 분야에 몰리게 됐습니다. 이처럼 재일교포들이 차별을 받게 된 것은 일본에서 자본주의 물을 먹어 미심쩍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 고영희가 만수대예술단에 들어간 것도 그런 속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출신성분을 밝히지 못하니까 김정숙과는 달리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선전을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거군요?



리: 네, 그렇습니다. 과거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어머니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 선전이 대대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고영희에 대한 선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2년에 일시적으로 군대를 중심으로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이라고 호칭하며 우상화 선전에 나선 적이 있지만 그때도 이름은 밝히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다시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조짐이 보이는데요, 지난 13일 로동신문에 조선작가동맹 시문학분과위원회가 쓴 ‘영원한 선군의 태양 김정일’이라 서사시에서, ‘평양 어머님의 발자국 소리’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고영희를 가리키는 것인데요, 이 시에서도 김정일과 김정은의 이름은 나왔지만 고영희의 본명은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고영희의 출신성분이 드러날까봐 매우 조심스럽게 우상화 선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회 : 최근 고영희의 아버지가 남조선 제주도 출신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지요?



리: 네, 그렇습니다. 고영희의 아버지 이름은 고경택으로 1929년에 돈을 벌기 위해서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일본으로 갔습니다. 고경택은 제주와 일본을 오가는 밀항선을 운영하다 일본 경찰에 적발돼 체포됐고, 교화소에서 나와 1962년에 가족을 데리고 북조선으로 이주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1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고경택에 대한 일본 법무성 기록에는 ‘강제퇴거’로 기록돼 있는데요, 이 자료를 보면 다른 재일교포들처럼 ‘지상락원’을 꿈꾸며 북조선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반강제적으로 북조선으로 송환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고경택의 족보를 살펴보니까 제주 고씨 영곡공파 중시조 31세손으로 확인됐습니다.



사회 : 김정은의 어머니는 재일교포 출신이고 외할아버지는 남조선 출신이네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김정은 우상화 선전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겠군요?



리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북조선 당국은 김정은의 어머니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점을 극비사항으로 결정하고, 이 내용을 류출하거나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히 처벌한다는 방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회 : 그런데 리유정 해설원,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손자인 김정은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던데요, 이건 무슨 이야깁니까?



리 : 네, 김정일도 아버지 김일성한테는 자신의 여자관계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맏아들 김정남을 낳아준 영화배우 성혜림과 살림을 차린 것도 처음에는 김일성에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장가를 가지 않는다’고 다그치자 성혜림이 살고 있던 1974년에 자신의 집무실 타자수 출신인 김영숙과 부랴부랴 결혼하기까지 했습니다. 김정일이 맏아들 김정남을 할아버지 앞에 데려 간 것은 정남이가 다섯 살 때인 1975년인데요, 김일성은 처음에는 상당히 화를 내다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또 하나밖에 없는 손자가 태여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김정일이라고 해도 두 번씩이나 아버지 몰래 여자와 살림을 차려서 비밀리에 자식을 낳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구나 김일성은 고영희가 기쁨조 출신으로 김정일의 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김정은을 정식 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회 : 지금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젊은 시절 흉내를 내면서 권력의 대물림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는데, 김일성이 저 세상에서 보고 있다면 코웃음을 칠 일이겠습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김정은의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데요. 그러면 김정은의 경력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리: 김정은의 경력은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단 류학 경력이 있습니다. 김정은은 1998년 가을부터 3년 여간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있는 국제학교를 다녔습니다. 10대 중반에 다닌 것인데요, 이 류학 경험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개혁개방 정책을 취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하고 있지만 속 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김정은은 류학시절에도 외부와 거의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김정일 때문인데요, 김정일은 맏아들 김정남이 스위스에서 류학생활을 하면서 자본주의 물이 들자 둘째 아들 김정철과 셋째 아들 김정은의 류학 생활은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정은이 자본주의 문화를 접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데 상당히 신경을 썼는데요, 김정은의 스위스 집에는 왕재산경음악단 녀성 단원들을 상주시키고 평양의 관저와 똑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아들이 이들과만 접촉하도록 했습니다. 또 간혹 김정은이 외출할 때는 스위스 주재 북조선 대사 리철이 반드시 동행하도록 했습니다.



사회 : 사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커나가는데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왕자처럼 떠받들리며 살아왔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며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서요?



리: 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김정일은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하기 위해 가족들의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만약 어린 자식들을 북조선에 있는 학교에 보낼 경우 수령의 가계에 대한 비밀이 어떤 식으로든 새나갈 수 있기 때문에 북조선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김정은은 어린 시절에는 스위스에서 공부를 했고 중고등학교 과정은 고려호텔 같은 별도의 장소에서 선생을 불러다 개별적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북조선 당국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선전해 왔는데 역시 학생들과 같이 다닌 것이 아니라, 개인 선생을 불러다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했고, 특히 아이들을 통해 인민들의 정서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회 : 네. 지금까지 리유정 해설원이였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김정은은 대를 이어 혁명을 이어간다는 명분을 내세워 3대 세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데다, 나라와 인민을 위해 기여한 어떤 경력도 없습니다. 더구나 김정은은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김정일의 독재를 계승하겠다며 날뛰고 있습니다. 서른도 안된 김정은에게 북조선의 미래를 맡겨두시겠습니까? 오늘 2.16 특집대담을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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