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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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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1-08 13:12


사회 : 우리 인민들이 김정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이제 갓 2년이 지났습니다. 평양에 있는 핵심 간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당과 군의 간부들조차 김정일이 중풍에 쓰러지고 난 후에야 처음으로 이름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아직 20대에 불과한 김정은이 불과 3년도 안 돼 북조선을 이끌어갈 령도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정작 김정은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부랴부랴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선전을 하느라 뒤늦게 법석을 떨고 있지만 이것이 대부분 허위와 과장에 가깝다는 것은 이미 우리 인민들도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과연 김정은의 실체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겠습니다. 자리에 리유정, 한상호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리, 한 : 네, 안녕하세요.



사회 : 네, 먼저 김정은의 출생부터 한 번 살펴봤으면 합니다. 김정은이 아들로 치면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죠?



리 : 네, 김정은은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셋째 아들입니다. 김정일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세 명의 녀자에게서 아들 셋, 딸 셋, 합해서 총 여섯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요, 첫 번째 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배우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맏아들 정남이 태어났습니다. 또 김일성이 붙여준 서기실 출신의 김영숙과는 설송과 춘송이라는 두 딸을 두었고, 김정일이 가장 아꼈던 고영희에게선 둘째 아들 정철과 셋째 정은, 그리고 여정이라는 딸을 두었습니다.



사회 : 녀자관계가 하도 복잡하니 가족관계도 엄청 시끄럽구만요, 그런데 사실 김정일이 정식으로 결혼한 적이 없으니까 부인이라기보다는 전부다 애첩이였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 네,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라고 하면 아버지인 김일성이 붙여준 서기실 타자수 출신의 김영숙이 본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아들인 김정일이 성혜림과 살림을 차린 줄도 모르고 김영숙을 붙여줬는데요, 당시 아버지에게 권력을 물려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김정일은 차마 영화배우에다가 유부녀인 성혜림과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밝힐 수가 없어 김영숙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성혜림은 장남을 낳고도 평생 김일성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가 없었는데요, 결국 이것이 화병이 돼 로씨야에서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김영숙도 평생 동안 김정일의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요, 숱한 녀자들 중에서 그래도 김정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사람이 바로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 : 한 마디로 김정은이 김정일이 가장 사랑했던 애첩의 자식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오늘이 바로 김정은의 생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태여난 년도를 두고 말이 많던데, 이건 무슨 일이죠?



리 : 네, 현재 북조선 당국은 김정은이 1982년 1월 8일 봉화진료소에서 태여났다고 밝히고 있지만 북조선 내부의 고위 소식통들과 남조선 정보당국은 이와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1982년이 아니라 1984년에 태어났다는 것인데요,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1912년에 태여나지 않았습니까? 또 1942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김정일과 꺽어지는 해를 맞추기 위해 2년 먼저 태어난 것처럼 조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두 살을 올렸다 이런 분석도 하고 있습니다.



사회 : 김정일도 사실 1941년에 태어난 것을 42년에 태어난 것처럼 조작했는데, 그 아들도 똑같이 조작했다는 말이군요, 물론 언제 태어났느냐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출생부터 조작됐다는 건, 그 누구보다 정직해야 하는 지도자로서는 큰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럼 다시 고영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봤으면 하는데요, 김정일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 고영희, 어떤 사람이었죠?



한 : 네, 고영희는 귀국 재일동포 출신입니다. 전쟁이 끝나기 바로 직전인 1953년 6월 16일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 쓰루하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영희의 아버지는 남조선 제주도 출신인 아버지 고경택을 따라 1962년 북조선에 들어오게 되는데요, 1972년 만수대예술단에 입단해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3년 두 달간 일본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요, 당시에 찍힌 사진을 보면 한 눈에 보아도 빼어난 미인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습니다.



사회 : 그럼, 김정일은 어떻게 만나게 됐습니까?



리 : 고영희가 김정일과 살림을 차린 건 1976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정일의 집무실에는 만수대예술극장의 훈련 장면을 볼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한 눈에 고영희의 미모에 반한 김정일은 간부들과의 연회장에 고영희를 불러들였는데요, 이른바 기쁨조가 된 것입니다. 기쁨조가 된 뒤에서 다른 녀성과 달리 고영희는 김정일의 사랑을 듬뿍 받아 항상 김정일의 옆자리에만 앉게 되었고 1976년부터는 아예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말씀드린 것처럼 아들 정철과 정은, 딸 여정을 낳게 됩니다.



사회 : 왕자를 낳고 왕비 행세를 하긴 했지만 결국 병으로 일찍 죽고 말았죠?



한 : 네, 고영희는 1998년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는데요, 사실 유방암은 암 중에서도 치료가 비교적 쉬운 암에 속합니다. 문제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유방을 잘라 내야 하는데요, 하지만 고영희는 이것을 거부하고 약물 치료만 받다 결국 2004년 사망하고 맙니다. 유방을 잘라낼 경우 김정일의 사랑이 멀어질까 두려워 약물 치료를 고집했다고 하던데요, 자기 자식들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애를 썼던 고영희의 립장에선 김정일의 사랑이 다른 여자로 향할 경우 이런 계획이 틀어질까 두려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 성혜림을 쫓아낸 립장에서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웠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 결국 그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구만요, 그럼 다시 김정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김정은이 스위스로 류학을 갔죠?



리 : 네, 김정은뿐 아니라 장남인 정남과 둘째인 정철과 동생 여정까지 김정일의 자식들은 대부분 스위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왕자들을 평백성들과 함께 교육시킬 수 없다 이런 의도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박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1998년 가을부터 스위스에 있는 국제학교에 몇 개월 다니다가 베른 인근의 공립학교로 옮겨 3년간 공부했습니다. 당시 학교를 같이 다닌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김정은은 스위스 주재 대사관 운전기사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밖에 나갈 때면 스위스 주재 대사가 항상 동행을 했고, 또 나이 먹은 대사가 나이 어린 정은이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며 이 때문에 북조선의 독재자 아들이다 이런 소문이 나돌았다고 합니다.



사회 : 당시 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한 : 네, 평범한 아이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을 직접 가르쳤던 공립학교의 수학교사는 김정은에 대해 학생들과 잘 어울렸으며 농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과 같이 학교를 다닌 동창들도 김정은이 서방세계의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냈고, 미국의 프로농구를 특히 좋아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회 : 평범한 생활을 했다고 보이는데요, 하지만 바깥세상과는 철저히 통제됐다면서요?



리 : 네, 김정일은 자식들이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는 것을 대단히 경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깥 외출은 거의 하지 못했고, 어쩌다 밖에 나갈 때도 스위스 주재 대사인 리철과 함께 반드시 동행하도록 했습니다. 또 왕재산경음악단의 녀성 단원들을 김정은이 살던 집에 보내 평양과 똑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이들과만 접촉하도록 했습니다. 또 고영희도 수시로 스위스로 달려가 정은과 형 정철을 단속했다고 합니다.



사회 : 스위스에서 돌아오고는 어디서 공부를 했죠?



한 : 김정은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학교를 다닌 건 스위스가 유일합니다. 북조선에 돌아온 김정은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선생들을 불러다가 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북조선에선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녔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교수들을 불러다 수업을 받은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정은은 제대로 된 친구나 동창, 선후배가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사회 : 어떻게 되면 고립된 채 말이 통하는 친구 하나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건데요, 이런 게 김정은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리 : 김정은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왕자로 떠받들려 살아왔습니다.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었는데요,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정상적인 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다툼도 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리해하는 법도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아니면 의견이 다르면 생각을 고치는 훈련을 하게 되는데요, 김정은에겐 이런 훈련을 할 기회가 없었다는 건 큰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사회 : 그럼, 이제 후계자로 락점된 이야길 좀 해봤으면 합니다. 김정은이 아들 중에서는 셋짼데요, 어떻게 후계자가 됐습니까?



한 : 네, 당초 국제사회에서는 봉건적 색체가 짙은 북조선에선 응당 장남인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분석이 많았습니다. 일단 동생들은 후계자가 되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김정남은 이미 버려진 첩의 자식이었습니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고민하던 시기 가장 사랑을 받았던 사람은 고영희였는데요, 조선시대에도 보면 장남보다는 애첩의 자식이 왕이 되는 경우가 흔히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첩의 자식이 후계자가 되는 건 애당초 어려웠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사회 : 더구나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도 사실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리 : 네, 김정남은 2001년 디즈니랜드라는 유희장을 가기 위해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발각돼 국제적 망신을 샀는데요, 이전에도 김정남은 일본에 여러 차례 드나든 적이 있는 걸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후 김정남은 북조선을 떠나 해외를 떠돌게 되면서 사실상 후계자 대열에서 완전히 탈락하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당시 일본 경찰에 김정남의 신분을 알려준 것이 고영희였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김정남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을 완전히 떨쳐 내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김정남뿐 아니라 김정은도 90년대에 일본에 밀입국해 디즈니랜드를 갔다 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분석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사회 : 그러니까 한 마디로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궁중의 암투였다 이런 말인데요, 그래도 바로 우에 형인 김정철도 있지 않습니까? 형인 정철이를 제끼고 김정은이 후계자로 된 리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한 : 네, 한때 김정철이 김정일의 뒤를 이을 후계수업을 받고 있다 이런 소문이 나돈 적이 있는데요,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만 김정일의 아들이긴 한데, 그냥 김대장 이런 식으로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형인 정철로 잘못 알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생각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료리사였던 후지모도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어려서부터 자신을 닮아 성격이 독하고 야심이 많은 정은이를 유독 아꼈다고 합니다. 대신 형인 정철에 대해서는 성격이 너무 계집애 같다며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김정일의 립장에서도 로회한 간부들을 이끌고 나라를 통치하기엔 형 정철은 너무 유약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 그렇다면 결국 자신을 가장 닮은 자식을 후계자로 선정했다는 말인가요?



리 : 네, 세상에 알려지긴 김정일이 2008년 쓰러진 이후인 2009년 초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선정했다는 지시를 내려 보냈는데요, 이미 내부적으로는 오래 전에 마음을 먹었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권력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비정한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은 후계자 선정을 차일피일 미뤄왔고, 결국 자신이 쓰러지고 나서야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 김정은은 아버지인 김정일과 같이 권력을 물려받았다 이렇게 보통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하지만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세습, 큰 차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 :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김정일은 삼촌 김영주, 계모인 김성애와의 치렬한 투쟁을 통해 권력을 쟁취했고, 오랜 기간 당간부들에게 구슬려 가며 후계자로 확정됐습니다. 또 후계자가 된 뒤에도 오랫동안 아버지의 후광을 엎고 차근차근 후계수업을 받아왔는데요, 이와 비교하면 김정은은 치렬한 권력투쟁도 없었고, 단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리유로 후계자가 됐습니다. 그나마 다른 아들들과 차이가 있다면 애첩의 자식이고 성격이 독하다는 것 하나입니다. 특히 김정일이 갑자기 죽으면서 후계수업을 제대로 받을 시간도 없었고, 후광도 없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김정은의 앞날이 그만큼 험난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회 : 네, 어느 일개인을 놓고 본다면 극악한 사람은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개인이 평범한 인민이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독재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떻게 보면 꿈도 많고 세상에 하고 싶은 것도 많을 어린 나이에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다 무너진 나라와 독재체제를 물려받았습니다. 이제 김정은이 그냥 일개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의 실체를 똑똑히 알아야 하는 리유일 것입니다. 김정은의 생일을 맞아 살펴본 김정은의 실체,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네, 리유정, 한상호 기자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리, 한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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