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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실화방송-추적, 김정일의 실체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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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12-31 12:12

내레이션: 2011년 12월 17일, 독재자 김정일이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민들은 오랜 압제의 사슬에서 해방 됐다. 이제 김정일 독재집단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할 과제가 나서고 있다. 그 작업은 김정일의 범죄 행위를 밝히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송년특집, <추적, 김정일의 실체를 파헤친다>



2011년 12월 19일 오후 12시 방송원 리춘희가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알렸다. 리춘희는 온갖 미사려구를 다 동원해 김정일의 생애를 평가하고 있었다.



삽입1, 조선중앙통신: “장구한 혁명령도의 전기간 인민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며 언제나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였으며 강성국가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며 초강도의 현지지도강행군길을 (FO)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과로로 하여 렬차에서 순직하시였다.”



그러나 자루 속의 송곳을 감출 수 없듯이 김정일이 민족과 인민들에게 저지른 범죄는 결코 덮어지지 않는다. 김정일의 가계에 대한 말을 했다는 리유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던 김영순의 절규는 인민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삽입2: “내 너무 가슴 아프고 원한에 사무쳐서, 아들도 두 번이나 북송돼서 너무 고문을 받아서 기관지 출혈을 2키로나 했어. 그래서 뼈하고 가죽만 남으니까 병 보석으로 내 놓았거든. (중략) 그러니 내가 김정일을 두둔하겠냐 말이야. (중략) 정말 난 눈물없이 살 수도 없고 가슴이 너무 아프고, 하늘 아래 나 하나 만들어 논 저 저주스러운 김정일.



김영순의 부모는 굶어 죽었고, 아들은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붙잡혀 잔인한 고문을 받았다.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조선 땅에는 셀 수 없이 많다.



조선의 비극은 1974년 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결정을 통해 김정일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성우: ‘KBS 대기획, 김정일 1편’의 내용입니다.



삽입3: 1974년 2월, 북한 로동당 대회, 김정일은 당원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출됐다. 그의 나이 32세, 김정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지도자는 국가와 인민들에게 어떤 기여를 했는가에 따라 평가된다. 위대한 령도자라고 찬양하는 김정일이 조국의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김정일은 인민들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피땀 흘려 건설해 놓은 조선의 경제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나라의 한정된 자원을 독재체제 강화를 위한 우상화 선전과 군사비에 쏟아 부으면서 경제는 끝없이 추락했다. 북조선 전문가 고려대학교 유호열 교수의 설명이다.





삽입4: 가장 중요한 것을 우상화 작업에다가 설정해 놓다보니까 나머지 부분이 상대적으로 관심도 덜하고 자원배분도 부족하고, 더구나 계획경제하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전반적인 경제가 군수공업 강화와 우상화 강화, 이런 부분에 쏠리다 보니까 일반경제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가 급격히 기울어져갔지만 김정일의 우상화 놀음은 계속됐다. 특히 1980년대 평양을 혁명의 수도답게 꾸리겠다며 대대적인 건설을 벌렸고, 남조선이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대규모 체육시설들을 기분 내키는 대로 건축했다. 1989년, 김정일은 국가의 모든 자원을 끌어다가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열면서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전 북조선 외교관 고영환의 증언이다.



삽입5: 1만 수천 명이, 외국 학생, 대학생들이 참가했는데, 1만3천 명의 비행기 표가 최소한 천불이 들었다고 쳐도 얼마입니까? 그리고 도중 체류비에 평양 체류비 다 돈 안 받았거든요. 그게 북한을 아마 최종적으로 목을 조른 축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그 후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끔찍했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1995년부터 4년간 진행됐던 고난의 행군, 강행 군 기간 동안 350만 명의 인민들이 굶어죽었다. 김정일은 죽어가는 인민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식량이 아닌,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영구보존하는 데 막대한 돈을 투입했다. 김일성을 신격화해서 그의 권위에 기대 독재체제를 강화하자는 속심이였다. 김정일은 총 20억 딸라를 들여 김일성의 시신궁전, 금수산기념궁전을 완성시켰다. 남조선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남성욱 소장의 말이다.



삽입6: [남성욱/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 북한에서 성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20억 달러 이상이 든 아주 거창한 기념물이죠.]



또한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100만 딸라, 시신 관리를 위해 매년 80만 딸라를 썼다. 죽은 수령을 위해 인민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김정일은 희세의 독재자라는 평가밖에 내릴 수가 없다.



김정일은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인민들을 철저히 기만해 왔다. 세계 각지에서 사들인 산해진미로 매일 식사를 하면서, 줴기밥을 먹고 쪽잠을 자며 혁명을 한다고 웨쳐왔다. 그가 벌린 혁명은 조선을 가난과 굶주림, 처참한 인권유린의 현장으로 만든 것이며, 평화 시기에 6.25전쟁 때보다 더 많은 인민들을 굶겨 죽인 것이다. 이 때문에 생전의 황장엽 전 로동당 비서는 김정일을 민족반역자라고 규정했다.



삽입7: (황장엽 前 조선로동당 비서) : “수백만 사람이 굶어 죽였지,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들었지, 핵무기 개발해 위협하고 있지, 이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거,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김정일이 마침내 렬차 안에서 객사했다. 김정일이 살아서 치르지 못한 죄 값은 이제 력사가 심판할 것이다.



송년특집, 실화방송, 추적, 김정일의 실체를 파헤친다. 지금까지 해설의 윤성호, 연출의 송현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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