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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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2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1994년 김일성의 죽음이 확인된 순간, 그의 경호를 맡았던 호위총국 1국은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호위총국 1국의 고급군관 한 명이 김정일을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추적, 사건과 진실, 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김일성은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주석부 책임서기였던 전하철이 남긴 기록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기록에는 김일성이 ‘미공급에 대한 걱정’과 ‘간부들이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려고 하지 않고 말공부만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비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김일성이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과로로 사망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수기를 쓴 호위총국 1국 고급군관은 심장마비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북조선에는 김일성과 그 친인척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보약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세계 그 어느 지역에 가서라도 억만금을 주고 가져오는 전문부서가 있고, 또 이것을 약재를 만들어내는 ‘만수무강연구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 최고의 의료진과 시설을 자랑하는 봉화진료소 의사들이 김일성의 치료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봉화진료소의 과장들은 모두 조선적십자종합병원 분원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그 리유는 적십자종합병원에서 인민들을 상대로 약효 및 생체실험을 한 뒤, 그 림상경험을 토대로 특권층에 대한 치료를 최대한 실용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종합적인 치료기지라고 북조선이 자랑하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은 이렇듯 김일성과 특권층들을 위한 일종의 종합 실험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불치도 아닌 심근경색으로 김일성이 북남수뇌회담을 앞두고 급하게 사망한 것입니다. 의문점은 우선 수뇌회담 장소인 묘향산 출발 준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김일성은 남조선의 대통령 김영삼과의 만남을 앞두고 매우 흥분해 있었습니다. 회담 날짜는 7월25일였지만 김일성은 김영삼이 숙소로 쓸 묘향산 초대소를 살펴보는 한편 북남수뇌회담 준비를 위한 경제일꾼협의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미리 출발했습니다. 먼 거리가 아니어선지 다른 행차 때보다 따라가는 사람도 적었고 호위장비도 간편했습니다.



그가 출발하기 며칠 전 김일성을 호위할 ‘호위안’이며 또 동행성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직접 점검한 사람은 김정일이었습니다.



김정일 부관 :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주석부 책임서기가 왔습니다.



김정일 : 그래? 들어오라고 하라.



전하철 :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이번에 수령님을 수행할 사람들의 명단을 가지고 왔습니다.



김정일 : 그래. 좀 볼까. 수령님 심장담당 주치 의사는 이번에 휴가를 주는 게 어때. 지난 번 카터 왔을 때부터 쉴틈없이 움직였는데, 다른 의료 일꾼들도 있으니까 이번엔 좀 쉬게 하지.



전하철 : 네. 알겠습니다. 더 주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김정일 : 잠깐, 이 의료장비들을 다 가져가나?



전하철 : 네? 수령님이 이동하실 때마다 가져가는 장비라서.....



김정일 : 지금 수령님께서 통일 성업을 눈앞에 두고 마음도 육체도 아주 양호한 것 같은데, 굳이 최첨단 의료장비들을 다 가져갈 필요가 있겠어? 꼭 필요한 것 빼 놓고는 놓고 가도록 해.



전하철 : 그래도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정일 : 수령님 건강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어.

전하철 : 네, 알겠습니다.



김일성이 평시에 협심증 증세가 있었고 더욱이 나이가 여든을 넘어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기 위해 심장담당 주치의사가 동행하는 것은 철저한 호위원칙으로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그 주치의사를 묘향산행 명단에서 빼버렸습니다. 또한 김일성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혈압이나 맥박, 체온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그 어떤 큰 수술도 진행할 수 있어서 일명 ‘움직이는 병원’이라고 부르던 독일산 최첨단 의료설비들도 묘향산 수행에서는 제외됐습니다. 이에 대해 김일성의 부관은 의문을 제기했으나 김정일의 지시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행위가 될 것만 같아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조치는 평소 김정일의 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였습니다. 김정일은 친위대원들을 상대로 김일성의 경호와 관련해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매번 강조해 왔습니다. 호위사령부 청사에 들어가면 정면의 대형 대리석판에 ‘수령님의 호위 사업에는 천만번 중 단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됩니다’라는 김정일의 친필이 사령부의 생명처럼 쪼아 박혀 있습니다. 전 호위대원이 신념화, 생활화하라는 의미로 호위사령부 내부 곳곳에 이 구호를 걸어놓을 정도였는데, 그런 김정일이 이렇듯 중대한 실수를 한 것입니다.



7월3일, 묘향산에 도착한 김일성은 행장을 풀어놓기 바쁘게 김영삼 대통령의 숙소로 정해진 초대소를 찾았습니다. 랭장고의 크기며 방의 조명문제, 가구 색깔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둘러본 김일성은 김영삼을 만나보기나 한 듯 들뜬 마음으로 자기 서재로 돌아가 무엇인가 부지런히 글을 썼습니다. 훗날 자기가 답방으로 서울에 도착했을 때 환영연회에서 직접 랑독할 연설 원고였습니다. 원고는 30분짜리 분량이었는데, 반세기 만에 만난 남조선 인민들에게 하는 인사말로 시작하여, 북과 남이 합쳐진다면 조선반도는 세계 선진국으로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김정일의 허위보고 탓에, 남조선 인민들이 자신을 떠받들고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이렇듯 자기 환상에 빠져서 통일연설문을 직접 작성해보다가,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던지 김정일에게 전화해서 장시간 읽어주기까지 하였습니다.



김일성 : 조직비서, 연설 내용이 어때?



김정일 : 수령님! 서울 시민에게 그냥 ‘김일성이 왔습니다.’ 그러지만 말고, ‘백두산의 호랑이 김일성이 왔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치십시오!



김일성 그래. 거 좋구나.



그 부추김에 김일성은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했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김일성 사망 직전 父子암투 120시간’, 신동아(p142 ~ 164), 2005.08.01

2. 김정일 리포트, 손광주 지음,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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