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1997년 8월 남조선의 종교지도자 오익제가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장군님의 품을 찾아 한 달음에 달려왔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평양역에 도착한 오익제의 표정은 어두웠고 일그러져 있었다. 오익제는 도착 성명을 발표한 직후 어디론가 끌려갔고 그 뒤로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과연 오익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사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던 1997년 8월, 평양역에서 환영집회가 있다며 사람들에게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3천여 명의 사람들은 굶주림과 더위로 힘들었지만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평양역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남1 : 야, 정말 덥구나. 그런데 누가 오길래 이렇게 요란하게 행사를 하는 거야.



남2 : 글쎄. 곧 알려주겠지 뭐.



남1 :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배급이나 줄 것이지 이런 행사는 왜 하는 건지.....



남2 : 야, 누가 듣겠다. 소리 좀 낮춰



사람들은 어떤 행사인지도 모른 채 평양역 안의 자그마한 광장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리를 다 잡았을 때쯤 방송차에서 행사 조직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자 : 남조선의 유명한 종교인의 한 사람이 이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남조선 인민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종교지도자로서 장군님을 뵙기 위해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우리 공화국을 찾아 왔습니다.



남1 : 야, 황장엽이가 남조선에 갔다더니 그 대용으로 남조선 사람을 데려온 모양이다.



남2 : 그래, 그것 밖에 없지.



남1 : 근데 누굴까. 황장엽이랑 맞먹는 정치인일까?



행사 시작 20분 전에 남조선에서 오는 사람의 환영집회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1997년 2월에 있었던 황장엽 국제비서의 남조선 망명 사건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황장엽 사건에 대한 대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멀리서 기차의 경적소리가 들렸습니다. 북경-평양행 국제열차가 서서히 평양역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다시 방송차에서 안내 방송이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는 의거입북한 사람의 이름과 직책까지 구체적으로 소개됐습니다.



조직자 : 남조선 천도교 교령이였고, 민주인사 김대중이가 총재로 있는 정당인 국민회의의 고문인 오익제 선생이 공화국에 품에 안깁니다. 우리 이제 오익제 선생을 열렬히 환영합시다.



군중들 : 만세! 만세! 만세!



기차가 멈추고 군중들의 만세 소리가 한참을 울렸지만 오익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10분쯤 지났을 때 오익제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군중들 : 만세! 만세!



조직자 : 지금부터 김정일 장군님의 품에 안긴 남조선의 전 천도교 교령이며 국민회의 고문인 오익제 선생이 평양 도착 성명을 발표하겠습니다.



녀1 : 장군님 품에 안기는 사람의 인상이 왜 저 모양이야. 꼭 똥 먹은 인상이네



녀2 : 진짜 의거입북한 거 맞아?



장군님을 만나기 위해 천신만고의 고생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 목표를 이룬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야 했지만, 오익제의 표정은 어두웠고 찌푸려져 있었습니다. 또한 성명서를 읽는 목소리도 낮고 힘이 없었습니다.



오익제 : 나는 남조선 천도교 교령이며, 국민회의 고문직을 맡고있는 오익제입니다. 먼저 나를 이렇듯 열광적으로 환영하여 주는 평양시민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녀1 : 남조선에서 잘 먹었다는 사람이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목소리가 저래.



녀2 : 그러게. 무슨 소리 하는지 도저히 못 알아듣겠구만.



녀1 : 네가 그 소리 알아서 뭐하게. 어쨌거나 빨리 끝나서 가면 좋겠다. 이럴 시간에 장마당에 가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사람들은 오익제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상하다고 웅성거렸습니다.



오익제의 의거입북 사건은 여러모로 의심 가는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남조선에서도 위상이 높은 종교지도자라고 선전한 사람이 의거입북 했지만 이상하게도 보도기관들에서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평양역에서 도착 성명을 발표할 때의 오익제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스스로 입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기차가 멈추고도 10여 분 동안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은 점도 많은 의혹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쩌면 오익제는 이 10여 분의 시간동안 평양 도착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주저하다가 설득과 협박을 당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첫 번째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전 북한 통일전선부 요원 11년만의 폭로(신동아, 2008년 10월호)

- 황장엽 회고록(시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