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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과 북조선의 전쟁 피해와 1인 독재체제의 시작

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안녕하세요.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의 장성무입니다. 오늘은 제16과 ‘북조선의 전쟁 피해와 1인 독재체제의 시작’입니다. 김일성이 남조선을 공산화하기 위해 쏘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6.25조선전쟁은 북과 남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습니다. 이후 북과 남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사회발전 방향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럼 오늘 이 시간에는 먼저 북조선의 피해와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통일조선신문의 발표에 따르면 조선전쟁으로 인하여 사망과 부상, 행방불명된 사람은 조선인민군 61만여 명, 중국인민지원군 92만 여명, 그리고 민간인은 268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발견된 구쏘련의 문서에 의하면 전쟁 기간에 폭격이나 학살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는 28만 2천여 명으로 파악 되였으며 이들 자료와 기타 실종자들의 수 등을 고려하면 북쪽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자는 약 4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유엔군의 폭격으로 산업시설과 군수공업이 밀집한 평양 등 주요 도시가 크게 파괴 되였고 농업기반도 심하게 파괴되여 식량이 극도로 부족하게 됩니다. 농업기반의 파괴는 전쟁이 끝난 뒤 북조선이 곧바로 농업협동화를 추진한 리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막대한 피해를 인민들에게 가져온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은 무리하게 무력통일을 추진했던 김일성에게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전쟁에서 패하고도 이를 자신의 권력 장악을 위한 계기로 활용합니다. 최대의 희생양은 바로 박헌영이였습니다.



‘박헌영, 1900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복역한 후 1925년 조선공산당 조직을 창설한다. 1945년 8월 조선공산당을 재건했으며, 1946년 9월부터 미군정의 지명수배를 받자 북조선으로 도피한 후 1948년 9월 내각 부총리 겸 외무상이 된다. 박헌영과 이승엽 등 남로당계열은 전쟁이 일어나면 남조선의 공산주의 세력이 봉기할 것이라며 김일성의 전쟁 개시를 적극 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헌영의 이러한 주장은 전쟁 패배의 책임을 묻는데 활용되여 1953년 김일성에 의한 남로당계 숙청작업으로 체포된 후 1955년 처형된다.’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6.25조선전쟁의 책임을 모조리 뒤집어씌움으로써 전쟁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반대파를 제거하는 1석 2조의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휴전이후 김일성은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 복구와 관련해 당 중앙위원회 제2기 6차 전원회의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킬 데 대한 정책을 제기합니다. 김일성의 이러한 중공업 우선정책은 전쟁의 패배에 따른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조선 로동당 내에 있던 쏘련파와 연안파 일부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쏘련파나 연안파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중공업 우선 정책 보다는 당장 시급한 식량과 소비재 생산이 더 급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교과서에서는 쏘련파나 연안파가 마치도 반혁명종파분자들이라고 청산의 리유를 대지만 만약 이들이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정권을 잡았더라면 공화국이 오늘과 같은 1인 독재체제인 나라로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1956년 8월에 김일성이 쏘련파와 연안파를 제거하면서 절대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남로당파와 쏘련파, 연안파 등의 비판 세력을 제거한 김일성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정책과 농업협동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합니다. 드디어 1958년 농업협동화가 완료되고 1946년 토지개혁을 통해 분배받은 농민들의 토지가 협동농장으로 넘어가면서 북조선은 스스로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북조선은 6.25조선전쟁 이후 조선로동당의 일당독재와 개인소유를 없애고 협동적 소유와 국가적 소유만를 인정하는 사회주의화를 실현하게 되고 김일성은 자기의 권력을 절대화하고 공고화 하면서 사회주의적 독재체제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 제16과 ‘북조선의 전쟁 피해와 1인 독재체제의 시작’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제17과 ‘남조선과 미국 간의 호상방위조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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