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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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1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1994년 김일성의 죽음이 확인된 순간, 그의 경호를 맡았던 호위총국 1국은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호위총국 1국의 고급군관 한 명이 김정일을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추적, 사건과 진실, 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이번 사건과 진실에서는 1994년 무렵 호위총국 1국에서 복무했던 한 고급군관의 수기를 통해, 김일성의 사망 직전에 평양의 최고위층에서 벌어졌던 일을 되짚어 보려고 합니다. 이 수기는 김일성의 핵심측근과 그를 호위하던 호위총국 1국 관계자들의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후계세습을 했던 김일성의 마지막 심정과, 김정일이 김일성 측근 세력들을 제거해 나가게 된 배경을 리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럼 김일성의 죽음 뒤에 얽힌 비정한 권력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994년 7월 8일 북남수뇌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했습니다. 전체 인민이 울부짖으며 김일성을 애절하게 찾고 있을 때, 평양의 최고 고위층 내부에서는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김일성의 측근들은 김정일의 눈치를 보느라 대성통곡도 하지 못한 채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의 최측근인 리을설 호위총국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한 것은 영결식장을 지키고 있던 리을설이 침통한 표정으로 김일성의 시신만 바라볼 뿐, 곁에 있는 김정일을 마주보려고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때때로 자리에서 벗어나 구석진 곳에서 한숨을 짓기도 했고, 밤낮으로 혼자 술을 마시기까지 했습니다.



이 시기 북조선 인민들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 100일제 기간에 술을 먹거나 노래를 불렀다는 리유로, 혹은 비장한 추도가 외에 다른 노래를 감상했다는 리유로 직위에서 해임되거나 출당되여 반혁명분자라는 루명을 쓰고 산골로 추방당했습니다. 또한 국가안전보위부나 사회안전부, 사법검찰이 사상검토 차원에서 매 개인의 정서 상황을 매시 매분마다 예리하게 감시하며 검열하던 때였습니다. 이렇게 온 나라에 슬픔만이 강요되고 있던 때에, 리을설의 행동은 도저히 리해하기 힘든 것이였습니다.



리을설은 김일성의 항일 빨찌산 활동 당시 어린 나이에 전령병 활동을 했던 혁명동지로, 또20년간 김일성의 호위사업을 맡아온 최측근으로, 김일성과 평생을 함께한 사람이었습니다. 김일성에게 평생 동안 충성을 바쳐온 그가, 추모기간을 술로 보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와 반면 김정일의 최측근 사람들의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이 격분할 만큼 막무가내였습니다. 카메라나 사람들 앞에서는 손수건을 눈가에 몇 번 가져갔지만, 일단 휴게실에 들어와 앉으면, 새롭게 시작될 김정일 정권의 번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1 : 드디어 이제부터 새 시대가 도래했구만.



남2 : 우리가 줄을 잘 서긴 했지.



남1 : 줄 잘못 선 사람들은 아마 지금쯤 섬뜩할 거야.



남2 : 아무래도 그렇겠지. 역시 우리 눈이 정확했어.



김일성의 시신이 놓여 있던 상황임을 생각할 때 이들의 태도는 태연하다 못해 무엄한 언행이였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김정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김정일도 김일성이 사망한지 3일 만에 공개석상에서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김정일이 평양시 장례식 연도 행사에 쓸 김일성의 대형 영정이 완성됐다는 보고를 받고 수행성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간 날이였습니다. 초상화의 김일성은 한껏 웃는 모습이였습니다. 20리 바다를 가로막고 완공된 서해갑문을 바라보며 통쾌해하던, 그야말로 일생 가운데 가장 기뻐하던 순간을 담은 모습이였습니다. 장례영정사진으로 그렇게 환히 웃는 모습을 택한 것은 이를 통해 ‘김일성은 영원히 살아 있다’는 말을 실감나게 부각시킬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 때문이였습니다. 이 초상화를 앞에 두고 김정일이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김정일 : 미술가들이 수령님 그림을 아주 잘 그렸구만. 리부장, 수령님은 웃을 때도 참 미남이야.



리부장 : 헤헤헤 네, 그러신 것 같습니다.



김정일은 미술가의 수완에 계속해서 경탄하고 오래오래 심취해 있었습니다. 마치 김일성이 죽은 지 3일밖에 안 됐다는 사실을 감감 잊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김일성의 영생을 만들어가는 김정일의 혁명적 의리와 도덕을 강조하고 있던 당내 문헌 영화에서 이 장면이 공개되자, 당시 통곡과 눈물만을 물고 살던 당 내외 인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욱이 수령님의 죽음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고 했던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리용하려고 했습니다. 웃고 있는 김일성의 영정사진을 “자신과 똑같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후계자를 두고 가기 때문에 수령님께서는 가시면서도 만족하게 웃을 수 있다”는 식으로 선전 자료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김정일의 이 같은 태도는 김일성의 사망 원인에 대해 의혹을 갖게 했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첫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인용자료>

*‘김일성 사망 직전 父子암투 120시간’, 신동아(p142 ~ 164), 200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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