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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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 망명 사건 5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지난이야기 : 황장엽의 망명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북조선 내부에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이 시각 황장엽은 김정일 독재집단의 암살 위협 속에서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황장엽이 머물러 있는 방에는 저격을 막기 위해 철판이 설치되여 있었습니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밤낮으로 불을 켜놓고 있어야 했습니다. 갑갑했지만, 저격의 위험 때문에 황장엽은 1주일에 1번 목욕을 할 때 외에는 아예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가운데, 황장엽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을 조였습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수면제를 먹어도 가족들 생각으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다시 수면제 몇 알을 더 털어 넣고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안해 박승옥의 모습이 꿈속에 보일 때면 황장엽은 떠난다는 말 한마디 비치지 못하고 온 것이 가슴을 저몄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안해가 자신의 망명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황장엽은 인민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가던 1996년 여름 어느 날을 떠올렸습니다. 조국의 운명에 대한 걱정으로 번민하다가 집 뒤켠의 남새밭을 손보고 있을 때 안해가 다가와서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박승옥 : 여보,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요즘 안색이 좋지 않아요.



황장엽 : 걱정은 무슨, 아무 일 없어요.



박승옥은 뭔가 집히는 게 있는지, 남편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은 채 도마도 줄기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박승옥은 무슨 까닭에선지 갑자기 말투를 로씨야 말로 바꾸었습니다.



박승옥 : 우리야 지금까지 잘 살았지요. 그러니 당장 죽는다고 한들 무슨 여한이 있겠어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딸려 있나요? 이제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참아야 해요.



황장엽은 안해가 자신의 마음속을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그 말에 얼떨결에 마음의 한 끝을 내비치고 말았습니다.



황장엽 :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는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



역시 로씨야 말로 읊조리듯 말을 했는데, 황장엽은 그때 고리끼의 ‘매의 노래’에 나오는 매의 장렬한 최후를 머리속에 떠올렸습니다. 남편의 말이 끝나자 박승옥은 아무 말 없이 도마도가 든 광주리를 들고 돌아섰습니다. 그 어깨가 지금도 기억에 남을 만큼 축 처져 있었습니다.



북조선을 떠나기 보름 전쯤에도 안해가 망명의 암시를 느낄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황장엽은 그날 그동안 써두었던 두 트렁크 분량의 원고를 모두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때 안해가 가만히 다가와 물었습니다.



박승옥 : 아끼던 원고를 왜 태우세요?



황장엽 : 이젠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그때도 짤막하게 대답했지만 안해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습니다. 황장엽은 자신의 정신적 생산물들이 한줌 재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며 고급 만년필 따위의 귀중품들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도록 일렀습니다. 안해는 역시 아무 말 없이 따라주었습니다. 황장엽은 안해가 이미 자신의 속마음을 짐작하고,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희생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안해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황장엽은 가족을 구할 계책을 세우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자신의 마음속을 울리는 또 다른 목소리가 망명을 독촉했습니다.



황장엽 : 결국 가족을 구해낼 수도 없으면서 미련을 갖고 주저하면 너는 끝내 떠나지 못하고 만다. 그리되면 먼 훗날 력사는, 그때 북에서는 그렇게도 엄청난 폭력과 불합리 속에 인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당당하게 나서서 비판하거나 저항한 지식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황장엽은 사랑하는 안해에게 유서를 남기며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되뇌였습니다.



황장엽 : 사랑하는 박승옥 동무에게, 나는 가장 사랑하는 당신과 아들딸들, 손주들의 사랑을 배반하였소. 나는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를 가장 가혹하게 저주해주길 바라오. 나는 이것으로 살 자격이 없고 내 생애는 끝났다고 생각하오. 저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저 세상에서라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소. 내가 얼마나 더 목숨을 부지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생은 오직 민족을 위하여 바칠 생각이 오.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로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 망명 사건>, 다섯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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