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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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부 총련활동가가 되다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4-02 19:39


찬호가 귀국한 그해 고등학교 졸업이 림박해진 나는 서둘러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당시 어머니의 설득으로 귀국을 단념한 시점에서 나는 앞으로 성 청년과 같은 총련의 활동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무렵 나는 찬호가 더욱 그리워졌다. 이미 귀국해서 볼 수 없었지만 나에게 있어 찬호는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 찬호야말로 흉금을 터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와의 추억이라곤 다다미우에서 뒹굴거나 장난치며 빈둥빈둥 놀러 다닌 것이 전부였지만 그 시절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언젠가는 평양에서 찬호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리라 꿈꾸면서 나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총련지부의 일을 수걱수걱 해나가고 있었다.



총련 도치기현본부 시모쓰카 지부는 유원지로 유명한 오오야마에 있었다. 그 곳의 전임직원으로 된 나는 출근 첫날부터 부위원장이 되었다. 사실 당시 지부의 전임직원이란 고작 두 명뿐이었다. 그 중 선배가 위원장이었으니 나는 저절로 부위원장이 된 것이다. 그냥 아랫사람에 불과한 셈이었다. 월급은 2000엔 내지 3000엔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도쿄 본부에서 보내오는 기관지 조선민보를 배달하는 업무를 반년정도 맡아했다.



당시의 총련활동가라는 것은 동포들속에서 존경 반, 동정 반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총련의 전임직원은 민족애가 특별히 강한 순수한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존경을 받았지만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박봉만큼은 정말이지 울고 싶을 정도였다. 지방에 따라서는 월급을 못 받을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일본경제는 고도 성장기로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되거나 수도 고속도로가 깔리거나, 암튼 여기저기서 경제상태가 좋아진다는 소문들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회사원의 월급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 갓 대학을 졸업한 회사원의 첫 로임이 3만엔 내지 4만 엔인가 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2000엔- 3000엔의 급료로는 도저히 생활해나갈 수 없었다. 때문에 부족한 것은 동포들이 여러모로 도와주곤 하였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식사하고 가라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해주는 것은 거의 매일이었고, 돌아올 때는 쌀이나 김치 같은 것을 챙겨주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지부에 가서 마시라며 술 한 병을 건네주기도 했고 약간의 성의금 같은 것도 쥐어주기도 했다. 일 년에 한번 나에게 새 양복을 맞추어준 양복점 사장님도 계셨다. 때문에 나는 당시 이런 동포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생활해나갈 수 있었다. 물론 저금 같은 것은 한 푼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돈에 욕심이 없다거나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전문 총련활동가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조직과 동포들에게 있는 힘껏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순수하다면 순수하고 바보라면 바보였다. OUT



시모쓰카 지부는 도치기 현에서 제일 넓은 지역을 담담하고 있었다. 오야마시, 도치기시를 포함해 대략 500-600세대의 동포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 반 이상은 우리들의 숙적인 한국민단(당시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에 속해있었다. 왜냐하면 도치기 현에는 가난한 총련 동포들이 많았는데 그 중 과반수는 북조선으로 귀국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총련은 북조선을, 민단은 남조선을 지지하고 있다. 민단이 결성된 것은 1946년, 당시 재일 조선인들 속에서 조련(후에 총련), 즉 총련의 극좌적 경향에 반발한 동포들이 독자적으로 민족운동을 개시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비록 현재는 총련이나 민단이나 모두 화해통일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서로가 상대를 극도로 비난하는 것 외에는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 대결적인 것은 총련조직이었다. 우리 지부에서는 민단에서 무슨 회의를 개최한다고만 하면 무조건 방해하러 다녔다. 당시 민단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동포들을 총련에서 탈퇴시켜 민단으로 끌어들이려고 열심히 선전사업을 벌리고 있었다. 남조선에서 정보기관 관계자나 대학교수 등을 초빙해 북조선의 거짓선전을 폭로하는 강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거기에 내가 동료들을 데리고 가 란동을 부린 적도 있었다.



민단일군: 동포여러분! 북조선은 결코 지상락원이 아닙니다. 거기 가면 자유도 없고 오직 집단생활과 복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고 마음껏 배울 수 있다는 건 죄다 꾸며낸 말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총련은 지금 여러분 모두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 선전 믿지 마십시오. 가면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총련일군1(OL): “뭐 꾸며낸 말이라고, 어디에서 감히 그런 소릴 지껄이는 거야? 당장 집어치우지 못해, 당신 남조선에서 왔지, 안기부에서 보냈지”

총련일군2: "여러분! 총련은 절대로 여러분들을 속이지 않습니다. 이 사기꾼의 말을 듣지도 마십시오.”

효과(FO) 아수라장이 된 강연장 (총련일군1,2) “다들 일어서십시오, 어서 돌아들 가십시오. 저 자의 말은 하나도 들을 게 없습니다.” (민단관계자) 야, 너희들 뭐야. 저 놈들 끌어내. 너는 뭔데. 여러분 나쁜 놈들의 말을 절대 믿지 마십시오. 등등



우리는 온갖 악담을 다 퍼붓고 고함을 지르며 강연회진행을 극력 방해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망나니 같은 짓이었지만 그 때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이런 풋내기 활동가로 나는 총련 시모쓰카 지부에서 반년정도 지냈다.



음악: 시그널



나레이션: 라지오 랑독 수기, “우리 조선 총련의 죄와 벌” 원작: 한광희, 각색: 서미경, 연출: 정민재, 랑독의 리광명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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