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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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김정남의 백만딸라 생일 잔치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김정일 왕족의 생활을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김정일의 장남인 정남이의 어린 시절 얘기로도 설명이 충분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남이 생일은 5월 10일이다. 나는 76년 정남이가 6살 때부터 12살 때까지의 생일을 지켜봤는데, 제일 먼저 말해야 할 것이 매년 4월 중순쯤에 출발하는 선물구매단이다. 정남이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외국으로 사람을 파견하는데, 그것이 선물구매단이다.



관저의 물자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 2국에 9부가 있다. 2국 9부는 김일성 부자의 집무실 및 공관에서 쓰는 모든 물품을 조달하는 구매부다. 책임자는 부부장 강상춘 상좌인데, 강 부부장이 정남이의 선물 구매를 책임진다. 강 부부장은 일본을 시작으로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도이췰란드와 오지리까지 들러온다.



정남이의 선물은 해마다 백만 딸라 정도를 들여서 사온다. 남조선 사람들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자식에게 선물을 사주지는 못할 것이다. 김정일이 아들에게 주는 선물을 보면 남조선 재벌들이 좀스럽게 보일 정도다.



해설 : 여기서 잠깐 백만 딸라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잠시 짚고 가자. 2008년 11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1) 딸라는 조선돈으로 약 3,000원 가량 된다. 1백만 딸라면 조선 돈으로 30억원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백만 딸라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닐까? 2008년 11월 함북 무산의 입쌀 가격이 한 킬로에 2,500원이였다. 백만 딸라로 입쌀을 산다면 1,200톤이다. 이정도 식량이면 4인 가족이 한달에 100킬로그램의 식량을 먹는다고 했을 때, 입쌀만 먹고 살아도 1천년을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정일은 이 돈을 자기 아들 생일잔치에 쏟아 부었다.



내 얘기를 들은 남조선 사람들은 정남이의 생일선물비가 매해 백만 딸라 정도가 된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남1 : 일남선생도 참, 백만 딸라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요. 아무리 김정일이라고 해도 아이 생일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겠소.



이렇게 나에게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백만 딸라는 너무 큰 액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금액은 김정일 관저의 물자공급을 담당하는 강상춘 부부장에게서 직접 들었다.



생일선물에는 정남이의 옷이나 신발류 등은 물론 새롭게 등장한 모든 놀이기구가 포함된다. 특히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전자오락 기구는 가격에 관계없이 모두 구입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정남이의 생일선물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도 있고, 금(金)도금한 장난감 권총도 있다. 각종 놀이기구와 장난감은 나이 먹은 내가 봐도 현란할 정도였다.

정남이 놀이방은 규모가 3백 평쯤 된다. 오락실은 매년 생일을 기준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 오락실이 완전히 새로운 놀이기구 전시장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새로운 장난감을 잠깐씩 만져보고 살펴보는 데도 하루 이상 걸린다.



선물이 도착하면 정남이의 생일 하루 전인 5월 9일에 진열되는데 이튿날까지 안 보여준다. 정남이는 생일날에 원수복을 입고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뒤 김정일의 손을 잡고 오락실에 들어간다. 뒤에는 수행원들이 따른다. 오락실에 들어가서 선물을 둘러보는데, 김정일은 대충 돌아보지만 정남이는 하나하나 만져보고 움직여본다. 이렇게 놀이방을 둘러보고 나면 김정일은 측근들과 연회를 벌린다. 어른들이 벌리는 생일축하 연회는 술을 곁들여 오후 서너 시까지 가는 게 보통이다. 그동안 정남이는 부관이나 경호원과 함께 놀이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또 생일마다 로씨야 육.해.공군 원수복과 조선인민군 원수복을 맞춰온다. 그리고 매년 생일마다 정남이의 계급이 올라갔는데, 세 살 때 소장, 네 살 때 중장, 다섯 살에 상장, 여섯 살에 대장, 일곱 살에 원수, 여덟 살 때는 대원수로 올랐다. 아버지인 김정일이 올려주고 계급장을 군복에 달아주었다. 여덟 살 이후 관저의 수행원들은 정남이를 ‘대원수 동지’로 불렀다.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 그리고 내 동생 남옥이나 나는 정남이를 대장으로 불렀다. 별 넷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대장 노릇 한다는 의미였다. 세 살 때는 내가 없었는데 그때 수행원들은 ‘소장 동지’로 불렀다고 한다.



물론 김정일은 김정남에게 대원수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다. 간혹 아들을 ‘부관’이라고 불렀는데 제일 가까운 사람이란 의미였다. 남조선의 일부 언론에서 김정일이 아들을 똘똘이라 부른다고 보도했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다. 똘똘이라는 별명은 내가 붙인 것이고 우리 가족들만 불렀다.



그리고 5월 10일이 되면 관저의 모든 관리원들과 근무자들에게 정남이의 이름으로 선물을 하사한다. 선물은 조그마한 트렁크에 인삼주나 각종 통조림, 양복지 한 벌, 고급 인삼비누 등을 넣어서 준다.



김정남 : 동무들! 수고가 많소. 자 내가 주는 선물이오!



사람들 : 대장 동지의 뜨거운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 하사품은 생일선물 비용 백만 딸라와는 상관없이 아버지 김정일이 따로 준비하는 것이다. 관저 근무자들은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 외에 정남이 생일에 선물을 한 번 더 받는다.



해설 : 소박하고 검소하며 인민적 풍모를 지녔다는 김정일은 자기 자식을 봉건시대의 왕자처럼 키웠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자란 김정남을 비롯해 김정일의 다른 자식들은 현재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을 벌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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