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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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김정일과의 첫 만남 2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당시 이모와 정남이는 관저를 두 개 쓰고 있었다. 동평양에 있는 85호 관저와 중성동의 15호 관저였다. 관저에 가서 안 사실이지만 정남이가 나를 데려다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관저 안에서의 생활은 화려한 감옥과 비슷하다. 만나는 사람은 항상 그 사람이고, 아무리 넓고 화려하다 해도 울타리 안이다. 본 적이 없는 사촌형이 있다니 정남이가 빨리 보고 싶어한 것도 당연했다. 정남이는 일남이를 만나러 만경대혁명학원에 가자고 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1976년 5월 초 이수헌의 안내로 15호 관저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관저는 궁전 같았다.



부관 : 대장 동지, 누가 왔는지 보십시오.



정남 : 야! 일남이다. 일남이가 왔다.



정남이는 반가워했다. 정남이는 어려서부터 황태자처럼 큰 탓인지 누구에게도 경어를 쓰지 않았다. 나에게도 형이라고 하지 않고 항상 일남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대장’이라고 부르고, 둘만 있을 때는 “정남아, 정남아.” 하고 불렀다. 그 후 관저 생활을 했는데 나도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반말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 버릇 때문에 서울에 와서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나는 그날 만경대혁명학원 교복을 입고 갔는데, 처음 나를 만난 정남이는 우선 군복 비슷한 교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정남 : 일남아, 나는 너보다 더 좋은 군복 있다.



일남 : 그래? 그게 뭔데?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누구에게나 반말을 하는 것만 다른 어린이들과 다를 뿐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은 꼭 같았다.



정남 : 잠깐만 있어봐. 이거 봐라.



일남 : 야~ 그 옷 참 좋아 보인다. 무슨 옷이야?



정남 : 원수복이야. 그리고 나 쏘련 육해공군 원수복도 다 있다!



일남 : 정말, 야 그것 참 멋있겠다. 그런데 그 옷 다 어디서 난거야.



정남 : 우리 빠빠가 내 생일날 맞춰준 거야.



김정일 관저에 들어가서 알게 되지만 정남이는 자신의 생일이 되면 관저를 지키는 대대를 사열한다. 명예위병대라고 부르는데, 생일을 앞두고 쏘련 국방부에 주문해서 맞춘 쏘련 육해공군 원수복을 입고, 긴 칼을 차고 아버지 김정일의 손을 잡고 사열을 했다. 중앙아프리카의 보카사 황제를 본뜬 것으로 알고 있다.



정남이 옆에는 부관 세 명이 항상 따라다녔다. 책임부관은 김규채 대위, 그 밑에 이문길 중위와 윤철수 중위가 있었다. 철수는 영화기사였고, 문길이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 부관들의 임무는 정남이와 놀아주는 것이었다. 특히 문길이는 정남이가 어려서부터 만화 같은 걸 잘 그리고, 또 좋아했기 때문에 주로 그리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나는 모스끄바로 떠나기 전 두 차례 더 관저를 방문하여 저녁까지 놀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서 잤다.



해설 : 리일남의 어머니 성혜랑의 수기를 보면, 김정남은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하고 김정일의 관저 안에서만 자랐다. 정남이가 합법적으로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아플 때 가는 봉화진료소 뿐이었다. 김정일은 이처럼 자신의 장남을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성혜림의 가족들을 의지하게 된다. 먼저 리일남의 할머니인 김원주가 정남이를 키우기 위해 관저에 들어갔고 리일남의 어머니인 성혜랑도 정남이가 6살 되던 해인 1976년 3월에 가정교사가 되었다.



계속해서 리일남이 김정일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 대해서도 들어보자.



정남이 생일에 처음 ‘지도자 동지’를 만났다. 어머니로부터 미리 단단히 교육받고 들어간 나는 들어서자마자 정중히 인사드렸다.



리일남 :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안녕하십니까? 리일남입니다.



김정일 : 일남아 왔구나. 어서 오너라. 이모, 일남이 얼굴이 아주 잘 났습니다.



김정일은 처음 본 처조카를 어릴 때부터 자주 만난 사람처럼 대해줬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위치라 그랬는지 아니면 내 얘기를 이모에게 여러 번 들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먹서먹한 감정 없이 따뜻하게 대해줬다.



그날이 정남이 생일이라 김일성의 딸이자 정남이의 고모인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이 와 있었다. 또 나를 만경대혁명학원에 데려다주었던 김형원 중앙당 조직지도부 과장이 부부장이 돼서 와 있고, 얼마 후 이모와 함께 모스끄바로 가는 최준덕 부부장도 와 있었다. 리용무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과 김성윤 호위사령부 2국장도 와 있었다. 모두 김정일이 부른, 그러니까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김정일의 이복동생들인 김평일이나 김경진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다 리용무는 77년 목이 달아나고 이후 오진우가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직위의 높낮이에 따라 김정일의 총애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당시 오진우는 총참모장이라 리용무보다 직위가 높았지만 높다고 해서 부르는 게 아니었다. 김성윤도 곧 철직된다.



해설 : 김정일은 리일남의 어머니 성혜랑을 정남이의 가정교사로 삼으면서 위수구역 안에 새로 주택을 꾸려 이사를 하게 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다며 자신의 관저로 성혜랑의 식구들을 살도록 배정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리일남은 김정일의 관저에 들어가 그의 식구로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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