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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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을 뒤바꾼 진화론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9 10:58




안녕하십니까? 과거로부터 현재를 리해하고 그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배우는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시간의 송현정입니다. 오늘은 쉰여덟 번째 시간으로 ‘세계관을 뒤바꾼 진화론’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19세기는 과학의 시대였습니다. 유럽으로 확산된 산업화를 뒷받침할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19세기에 와서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당대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찰스 다윈은 1809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5대에 걸쳐 왕립과학자협회 회원을 배출했으며, 아버지는 의사였습니다. 다윈도 아버지를 이어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영 적응을 하지 못하고 대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다시 성직자가 되길 바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학교에서도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사람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식물학자인 한슬러 교수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다윈은 한슬러 교수의 권유에 따라 비글호를 타고 탐험려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다윈의 나이 22살 때의 일입니다.



1831년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는 영국을 출발하여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섬들, 오스트랄리아 일대를 항해했는데, 다윈은 보수를 받지 않고 박물학자로서 비글호가 닻을 내린 곳의 동식물과 지질을 조사했습니다. 이때 다윈이 수집하고 조사한 내용은 훗날 그의 연구의 귀중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특히 갈라파고스 섬의 동물에 대한 관찰은 진화론을 세우게 된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영국에 돌아온 다윈은 1839년 ‘비글호 항해기’를 써냈고, 그로부터 20년 뒤인 1859년 ‘자연도태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를 발표했습니다. 우리에겐 ‘종의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다윈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도태 원칙에 의거하여 종의 진화를 설명했습니다. 잠깐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어린 생명이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며 늙어 죽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연도태 원칙에 의해, 생존에 적합한 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부적합한 종은 멸종한다. 례를 들면 기린은 살아남기 위해 목이 그처럼 길게 발달되었으며, 카멜레온은 피부색을 바꾸는 생체조직을 개발한 것이다. 아주 작은 생체조직의 변화로 인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종은 계속 그 생체조직을 발전시켜, 수세대에 걸쳐 이런 변화가 지속되면 낡은 형태는 소멸되고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서 새로운 종을 이룬다. 지구가 처음 생성되었을 때 존재한 종이 현재까지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현존하는 종들은 원형에서 형질이 변화하여 현재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바뀐 것들이다. 인간도 이 같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진화되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인간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동물이라는 주장이 불러일으킬 어마어마한 충격을 념려한 때문이지요. 종의기원이 발표된 지 10여 년 뒤인 1871년에야 다윈은 ‘인간의 유래’라는 책을 발표하여 인간의 진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엄청난 충격파를 각계각층에 던졌습니다. 가장 발끈한 것은 종교계였습니다. 다윈의 주장이 옳다면 신에 의해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말은 거짓이 되고 말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진화론을 극력 배척하고 다윈의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행위를 금지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종의 기원’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초판 1250부가 단 하루 만에 다 팔려 나갔습니다.



진화론은 여러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를 믿지 않게 되었고,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자연의 진화과정에서 우연히 나타난 종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래, 또 한 번 사람들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이었습니다. 때문에 진화론을 모르고서는 19세기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의 발달을 제대로 리해할 수가 없습니다. 다윈의 리론은 사회분야로까지 확대 적용되어 사회적 다윈이즘, 다시 말해 사회진화론으로까지 그 리론이 전개되었기 때문이죠.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제58화 ‘세계관을 바꾼 진화론’ 편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제59화 ‘미국의 남북전쟁’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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