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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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뽈레옹 황제가 되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9 10:58




안녕하십니까? 과거로부터 현재를 리해하고 그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배우는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시간의 송현정입니다. 오늘은 쉰 네 번째 시간으로 ‘나뽈레옹 황제가 되다’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프랑스의 나뽈레옹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오늘은 160cm의 작은 키를 가진 포병장교였던 나뽈레옹이 황제가 되어 전 유럽에서 승승장구하던 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수많은 영웅들을 낳았습니다. 바스띠유 감옥 습격을 지도한 까미유 데물랭, 혁명시인 파브르 데글랑틴 또 자코뱅 당의 지도자로 공포정치의 대명사가 된 로베스피에르 등등. 이 영웅들은 하나같이 서릿발 같은 혁명의 제물이 되어 암살당하거나 혹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황제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나뽈레옹 보나빠뜨르입니다.



나뽈레옹 보나빠뜨르는 1769년 프랑스의 식민지 코르시카 섬에서 이딸리아계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해군장교가 되고 싶어 했지만 식민지 출신이라는 불리한 조건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으며, 거기서도 귀족가문 출신에게만 허용되는 기병이나 보병장교는 되지 못하고 포병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20세의 나이로 프랑스 혁명을 맞았습니다. 1791년 22살이 된 그는 자코뱅당에 가입하여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자코뱅 정부의 포병련대장이 되었으며, 2년 후에는 자코뱅당의 반대파였던 왕당파가 영국을 끌어들여 벌인 뚤롱전투에서 영국군대를 섬멸하여 일약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1795년 자코뱅당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여 처형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나뽈레옹도 체포되어 2년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나뽈레옹은 당시 프랑스 정부의 무능과 부패 속에, 국내외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시민의 인기를 얻으며 화려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장교였음에도 전쟁에서는 선두에 서서 직접 지휘를 하였기 때문에 ‘작은 하사’라는 별명을 얻으며 부하들로부터의 신망도 두터웠다고 합니다.



1799년 말, 프랑스는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국과 오지리가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위협했으며, 온건파인 지롱드 당이 이끄는 정부는 지도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중이었습니다. 당시 영국과 인디아를 잇는 길을 차단하여 영국의 인디아 지배를 방해하고자 에짚트 원정에 나가있던 나뽈레옹은 마침내 몰래 에짚트에서 돌아옵니다. 그리고 동생 루시앙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때는 1799년 11월 18일이었습니다.



나뽈레옹은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최고의 집정관으로 3명의 ‘통령’을 두는 새 헌법을 만들어 국민투표에 붙였습니다. 새 헌법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통과되고, 나뽈레옹은 수석 통령으로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프랑스 국민은 안정과 질서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나뽈레옹은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드높여준 위대한 영웅이었으며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졌습니다. 나뽈레옹은 이 같은 국민의 바람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듯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지리를 굴복시키고, 1802년에는 숙적 영국과 긴장을 해소하는 ‘아미앵 조약’을 체결하기도 합니다. 10년 만에 평화를 맞은 프랑스는 나뽈레옹을 종신통령에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804년에 나뽈레옹은 국민투표에 의해 마침내 황제가 되었습니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프랑스가 불과 10년 만에 다시 황제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황제가 된 나뽈레옹은 유럽까지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뽈레옹이 이딸리아의 왕으로까지 즉위하자, 유럽 각국은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대 프랑스동맹이 결성되지요. 마침내 1814년 나뽈레옹은 동맹군에게 패하여 엘바섬으로 류배되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1년 뒤 엘바섬을 탈출하여 다시 전쟁에 나서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의 웰링턴에게 패하고 맙니다.



나뽈레옹의 유럽재패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19세기 유럽사회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 리념이 전 유럽에 퍼졌고, 프랑스의 침략에 저항하면서 유럽 각국의 민족의식도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제54화 ‘나뽈레옹 황제가 되다’ 편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제55화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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