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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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해군함선 천안호 침몰사건, 두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30 15:41

추적, 사건과 진실

- 남조선 해군 함선 천안호 침몰 사건, 두 번째



나레이션: 2010년 3월26일, 김정일 정권은 기습적인 어뢰공격으로 남조선 해군함선 천안호를 침몰시켰다. 화폐교환 실패로 루적된 인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아무런 경력도 없는 후계자 김정은에게 군사분야에서의 업적을 쌓아주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이었다. 3대세습을 위해 남조선 46명의 청년들을 희생시킨 김정일 정권, 그들의 죄악을 파헤친다.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해군 함선 천안호 침몰 사건.



지난이야기> 서해에서 경계임무를 서고 있던 남조선 해군함선 천안호가 알 수 없는 폭발로 침몰됐다. 그 시각 한 척의 잠수정이 사고해역을 빠져나와 공해상에 있는 모선에 접선하고, 곧바로 김영철 정찰총국장에게 련락이 가는데......



2010년 3월26일 늦은 밤, 김영철은 천안호 관련 보고 자료를 챙겨 서둘러 김정일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도착하니 후계자 김정은이 김정일과 함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정일: 그래, 괴뢰군 놈들 움직임은 어때?

김영철: 네. 장군님, 지금 추가공격이 있을까봐 서해해상분계선에서 경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우리 애들은 빠져 나왔어?

김영철: 여기 오기 전에 지금 남측 령해를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기지로 바로 복귀하면 괴뢰놈들에게 의심을 받을 것 같아서 중국 쪽으로 우회해서 3일 뒤에 복귀하도록 했습니다.

김정일: 잠수정을 현장에서 못 잡았으니 괴뢰놈들도 속수무책이겠구만. (호탕하게) 야, 김영철, 이번에 아주 통쾌하게 일을 잘했어!

김영철: (엄숙) 모두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친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탁월한 전략전술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 이제 각 부서들에 련락해서 남조선 내부를 한 번 흔들어봐!

김영철: 네, 장군님!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천안호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온갖 추측이 란무하게 되고 이것은 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선전에 능한 김정일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김영철에게 지시해 곧바로 남조선 내부 분렬을 위한 공작에 들어간 것이다. 김영철은 대남공작기구들을 통해 남조선의 고정간첩들에게 지시를 내려 온갖 의혹을 퍼뜨리도록 했다.



*성우: 남조선 중앙일보 4월26일자 보도 내용입니다.



삽입1. (1~00:33) 암초에 의한 좌초를 북의 공격, 미군 잠수함과 천안함이 충돌설. 천안함 함수와 함미가 모두 인양된 이후 민군합동조사단은 25일 ‘비접촉 수중 폭발’, 즉 어뢰나 기뢰 폭발로 인한 버블제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잇는 가운데 인터넷에는 여전히 괴담이 넘쳐납니다. 여기에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이를 선거용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등 괴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류언비어를 잠재우는 길은 사건의 배후를 정확히 밝히는 방법밖에 없었다. 남조선 당국은 민간과 군대에서 전문가 60여 명을 뽑아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또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영국, 오스트랄리아, 스웨리예 출신 전문가 24명도 조사단에 포함시켰다.



천안호가 어뢰공격으로 침몰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뢰파편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파편을 찾는 건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라고 할 만큼 어려운 일이였다. 천안호 국제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을 맡았던 윤덕용 교수의 발언 내용을 성우의 목소리로 들어보자.



삽입2: 어뢰발사 시험을 했을 때 어뢰 뒷부분이의 추진체가 남는 경우가 있다고 미군과 우리 해군에서 조언해 줬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작은 조각일 수도 있고, 어떤 형태로 어느 크기로 남을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만약 조사한다면 그런 부분도 찾아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란 것이 공통적 의견이었습니다. 사실 어뢰 잔해를 찾기 위해 소나 등 최신 기술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해저탐사를 할 수 있는 배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김정일은 그동안 남조선을 향해 여러 차례 테로를 시도했을 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철저한 준비를 했다. 1987년 남조선 려객기를 테로해 탑승객 100여 명을 모두 살해 했을 때도, 증거를 없애기 위해 폭파 위치를 바다 우로 선택했다. 깊은 바다로 비행기를 빠뜨려 흔적을 확실히 없애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테로를 저지른 북조선 공작원 김현희가 바레인에서 체포되면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남조선 조사단은 김현희처럼 사건의 배후를 밝혀줄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세계적인 선박건조 기술을 가진 남조선은 4월15일 침몰했던 천안호의 뒤부분을 무사히 건져내 곧바로 정밀 검사에 착수했다. 눈으로 봐도 절단면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안호 합동조사단은 다음날 외부폭발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윤덕용 합동조사단장의 발표 내용이다.



삽입3: 윤덕용(58초~1:26) 결론적으로 선체 절단면과 선체 내·외부에 대한 육안감식 결과, 내부 폭발보다는 외부폭발의 가능성이 매우 높으나, 최종적인 원인규명을 위해서는 함수를 인양하고 잔해물을 수거한 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세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4월24일 천안호의 앞부분까지 건져냈다. 조사단은 절단면에서 화약성분을 검출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화약성분이 공기에 로출되면 산화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조사단은 가제천을 들고 절단면 전체를 닦아냈다. 또한 폭발 지점에서 수거한 모래와 자갈에서도 화약성분 검출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노력결과 고농축 폭약성분을 검출해 외부 폭발이 있었다는 정황자료를 확보했다. 이외에 6개의 알루미늄 금속성분을 확보했지만 이 증거로는 ‘어뢰공격 추정’이라는 수준의 발표 밖에 할 수 없었다.



최종 발표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왔다. 합동조사단은 고심 끝에 최후의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특수그물을 리용한 쌍끌이 어선으로 폭발지점을 훑기로 한 것이다. 바닥을 건드려서 뒤집기 때문에 만약 어뢰 잔해를 수거하지 못하면 영영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위험이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색을 시작한지 닷새째인 5월15일 아침, 작업을 하던 김남식 선장의 배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해군 함선 천안호 침몰 사건,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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