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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과 주체라는 용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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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안녕하세요.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의 장성무입니다. 오늘은 제38과 ‘주체라는 용어의 등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의 혁명을 옳게 수행하기 위하여 쏘련이나 중국의 경험을 통째로 삼킬 것이 아니라 조선의 특수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이 말은 1955년 12월 28일 당선전선동원 대회에서 김일성이 한 연설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의 한 구절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조선에서 ‘주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연설이 계기가 되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초까지는 ‘주체를 세운다’라는 말은 있었지만,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를 누가 처음 사용했으며, 어떤 계기로 정식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주체사상의 리론적 기초를 만든 황장엽 전 조선로동당 비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김일성 서기실에 출근한 것은 58년 1월 3일이었는데, 그때까지는 ‘주체를 세운다’는 말만 쓴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체문제를 비교적 체계적으로 밝히기 시작한 것은 1961년 조선로동당 제4차 대회 이후의 일이었다.‘



조선에서 주체를 세우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59년부터 시작된 중쏘분쟁이 계기가 되였습니다. 쓰딸린이 죽은 후 흐루쇼브는 개인숭배를 반대하는 립장에 섰고, 쏘련은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비판하였는데 당시 북조선과 윁남, 알바니아 등은 중국을 지지하는 립장에 서 있었습니다. 김일성이 중국을 지지한 리유는 외형적으로는 흐루쇼브의 수정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선에서 쏘련파와 중국의 연안파를 제거한 후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자신의 1인독재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의도였습니다. 당시 김일성이 사회주의 강대국인 두 국가 간의 대립을 리용하여 자신의 지위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김일성은 “우리도 주체를 더욱 튼튼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것은 ‘큰 나라를 무조건 숭배하고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교조주의를 반대하면서 조선의 실정에 맞게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조선이 처해 있던 국제적 환경에서는 나름대로 옳바른 로선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초까지 주체사상의 내용은 ‘4가지 기본 로선’으로 요약됩니다. 즉 “혁명과 건설에서 견지하여야 할 근본 립장과 근본 방법은 자주적 립장과 창조적 립장이며, 견지해야 할 기본 로선과 정책은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1960년대 초까지의 주체사상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리론적 체계는 갖추지 않았고, 맑스-레닌주의를 조선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자는 일종의 ‘주체적 정책 로선’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기존의 맑스주의의 유물론적 립장과 변증법적 방법을 자주적 립장과 창조적 방법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조금의 변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리론적 기초가 마련되였다기보다는 쓰딸린주의에다 민족주의를 얹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 제38과 ‘주체라는 용어의 등장’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제39과 ‘남조선과 일본의 국교정상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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