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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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두 배

내 생애 봄날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9-23 18:09

대한민국에 온지도 어느덧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9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난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에겐 참으로 보람찬 날들이었다. 직업소개소에 비싼 소개비를 내고 직업을 구해야 했을 땐 속이 쓰리기도 했고, 생각보다 적은 소득에 실망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발 한 발 한국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내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꿈만 같았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외래어를 몰라 고생을 많이 하였다. 식당에서 일 할 때는 냅킨을 행주로 잘못 알아들었고,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할 때는 냉찜질에 필요한 아이스 팩을 먹는 것으로 착각하여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크게 웃기기도 하였다. 이런 웃지 못 할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짬짬이 외래어 공부도 하였고, 차츰 한국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살지 않았다면 벌써 저세상에 갈 뻔 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마다 종합건강검진을 받아 미리 병을 예방하는 제도가 있다. 국민건강관리공단에서 검진 비를 모두 보장하기 때문에 개인이 내는 돈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라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몇 년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우연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종합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글쎄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런데 나를 진료한 병원 원장이 지금은 의료 기술이 발전하였기 때문에 아무 걱정 말고 당장 수술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수술은 잘 되었고, 수술 후 2, 3년이 고비라던데 그 기간도 재발없이 무사히 넘겼다. 수술한 지 5년이 지난 지금은 건강을 되찾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지나고 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항암치료는 긴 시간동안 이루어졌다. 모든 것을 나라로부터 배려 받은 덕을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하다 봉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마음이 좀 떳떳할 것 같았다. 생각 끝에 강서구에 있는 실버 예술단을 찾았다. 나의 실정을 이야기하고 예술단원이 되어 봉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실버예술단은 장애인시설, 경로당 등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참가하여 공연을 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웃음을 준다. 나의 작은 힘이 사회를 위해 쓰인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


그러던 중 죽었다고 생각했던 막내딸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국경 연선에서 갈라져 생사를 알지 못한 채 20년이 지났다. 그런 막내딸을 이곳 한국에서 기적처럼 만났다. 이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성공적으로 암수술도 마쳐 건강을 회복하고, 죽은 줄 알았던 딸을 만나는 기적까지, 나는 이제 여한이 없다.


실버예술단 활동도 더 흥이 난다. 또 나는 파지를 주워 판 돈으로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매월 1만원씩 기부도 한다. 이런 나의 봉사생활은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내 혈육을 다시 만나는 그날,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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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김분옥 씨를 만났습니다.  


지난 2004년 7월 윁남에 체류하고 있던 탈북자 486명이 대거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김분옥 씨는 그 중 한명이었는데요, 6개월간 윁남에서 머물면서 혹여나 강제 북송되지 않을까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한국 땅을 밟게 됐을 때, 이젠 살았다는 안도감이 나왔습니다. 그리곤 한국에서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는데요.   
(제일 먼저 안도감이 나왔다. 그리곤 돈을 빨리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국에 와서 김분옥 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일이었습니다.
(50이 넘은 나이에 왔기 때문에 식당일보다는 간병인이 적합하다고 하나원에서 추천받았고 간병인 수료증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간병인으로 일을 시작할 때의 의지와는 달리 실제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은 두렵고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참 즐거웠다고 하는데요.
(목에 가래를 빼내는 일도 힘들고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죽어나가는 것을 보는 일도 무서웠다.)


열심히 일하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던 김분옥 씨, 그러나 한국에 온지 3년 되는 해에 위암이 발견됐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남편이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며 더 힘들어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담담했고 꼭 이겨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열심히 식이요법과 운동을 한 결과 현재는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5년 동안 악착같이 건강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은 완치했다)


위암 수술 후 건강을 되찾게 되면서 사회에 보탬이 돼야겠다는 마음으로 복지 시설을 찾아다니며 춤과 노래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인복지 시설, 장애인 시설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참 재밌고 행복하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60대가 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김분옥 씨.
(암을 이기고 살았다는 것,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 너무나 행복하다)


김분옥 씨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며 사는 것인데요, 김분옥 씨의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못사는 나라의 아이들을 돕는 것이 꿈이다)


CM1 김종환_험한 세상에 너의 다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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