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제47과 판문점 도끼사건

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안녕하세요.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의 장성무입니다. 오늘은 제47과 ‘판문점 도끼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인민군대 군인들이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먼저 사건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경,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에서 유엔련합군 측 경비중대장 보니파스 대위가 14명의 군인과 로무자를 인솔하고 유엔련합군 측 제3초소 남방 30m 되는 곳에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미루나무에 가지치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이때 2명의 조선인민군 군관과 10여명의 군인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 말라’며 트집을 걸었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자, 곧 20여명의 조선인민군인들이 달려와서 ‘죽여라’는 군관의 고함과 함께 곡괭이와 도끼를 들고, 유엔련합군측 성원들에게 사정없이 휘둘렀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련합군 측은 대항할 틈조차 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유엔련합군 중대장 보니파스 대위와 바레트 소위가 살해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북조선은 조선통신사 이름으로 아래와 같은 성명을 발표합니다.



‘도끼와 흉기를 가진 14명의 불한당들이 공동경비구역 안에 있는 나무를 마구 찍으려고 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찍으면 안 된다고 여러 번 타일렀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 측의 이 정당한 요구에 응하는 대신 우리 측 경비원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침을 뱉는 등 참을 수 없는 모독행위를 강행하여 나섰으며, 드디어는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우리 측 경비인원들을 구타하고 도끼를 던져 우리 측 경비인원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을 완전히 날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 명의 미군을 살해했다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사과의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반도에는 군사적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건 발생 당일 오후 5시 김일성은 전체 인민군과 로동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모든 정규군과 예비병력에 대해 전투태세 명령을 내립니다.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역시 경계태세에 돌입합니다. 남조선과 미국의 고위관계자들은 우선 정전위원회를 통해 항의하고 다음으로 강력히 권고하며, 그 다음은 공동경비구역 안에서의 예방에 필요한 경고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책임자 인도와 처벌 요구 등의 순차적 대응을 결정합니다.



유엔련합군은 남조선과의 합의 끝에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8월 21일 오전 7시에 잘라버리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선인민군이 무력으로 대응하여 국지전으로 확대될 경우를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김일성이 유감을 표시하는 사과문을 판문점을 통해 전달하고 이를 미국이 받아들이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판문점에서의 도끼살해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든, 계획적으로 일어났든 북조선 당국은 이 사건을 남조선과 미국으로부터 침략 위협을 받고 있다고 알리는 계기로 삼으려고 무진애를 썼으나 오히려 북조선의 호전성만 세계에 알린 셈이 되였습니다. 물론 북조선 당국은 지금도 예전의 주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 제47과 ‘판문점 도끼사건’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제48과 ‘유신체제와 박정희의 죽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