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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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스물다섯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11-30 17:05


나는 동생 현옥이에게 어머니가 물려주신 수예작품을 건네주면서, 만일 내가 다시 돌아오면 돌려줘야 한다고 당부 하다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념려 마. 내가 잘 보관했다가 돌려줄 테니까.” 현옥이는 내 심정을 아는지 애써 쾌활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래일 나가서 가족 사진이라도 찍을까? 야, 가서 잘 하라우! 괜히 집안망신 시키지 말구 말이야...”



현옥이는 나를 고무하려다 끝내 나를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자정이 다 되여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서로 다투어 오늘 있었던 일을 토막 토막 설명했다. 아버지는 옷 벗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서서 못 알아 들은 사람처럼 같은 내용을 되묻고 되물었다. 아버지 얼굴에서 섭섭해 하는 표정이 스친것은 잠깐 뿐 곧 침착을 되찾으시고 나를 불러 앉혔다.



“나는 너를 잘 키워서 좋은 데 시집보내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길 바랬다. 아이들에게는 현모가 되고 남편에게는 양처가 되길 바랬어. 그렇지만.... 옛말에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사람이 태여나서 조국을 위해 값있게 살다 죽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을 항상 명심하고 당에서 하라는 데로 일 잘 해라. 우리 현희가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나를 고무하고 몇 가지 당부를 하였으나 여전히 섭섭해 하는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아버지 말에 기를 기울이다가 현모양처가 되길 바랬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동생들에 둘러싸여 사진첩을 하나하나 보면서 지난 일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가족과 헤어지는 섭섭함도 있었지만 설레이는 흥분감이 더 컸다. 내가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뽑혔다는 자긍심과 앞으로 전개될 당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가슴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것은 흔히 어른들이 품에서 자식을 떠나 보내며 느끼는 당연한 감정과 같은 것이며 괜한 로파심이라고 생각했다. 당에서 나에게 베푼 배려와 거는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였다.



다음 날은 어느 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어머니는 밤을 지새웠는지 아직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느라고 그릇을 덜거덕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눈이 많이 부어 있음을 보았다. 밤새 우신 모양이다.



“일어났니? 더 자지 않구.....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



어머니는 나를 보자 또 눈시울을 적셨다. 줄곧 내 생각만 하신 것 같았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현수에게 하신동 배급소에서 ‘식량 림시 정지 증명서’에 도장을 맡아 오도록 시키고 현옥이는 쌀을 들려 보내 ‘밥공장’에 가서 떡과 바꾸어 오도록 심부름을 보냈다.



10시쯤 정 지도원이 왔다. 아버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그는 나를 데리고 시내에 나갔다. 천리마 동상 못 미처 모란봉으로 올라가는 길 부근에 간판이 없는 상점이 있었다. 그 길은 당시에는 단독 주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빠트가 들어서고 북새 거리가 들어섰다. 상점에서 내의, 스웨터, 양말, 신발, 치솔, 치약, 비누까지 한 트렁크를 구입해 주었다.



정 지도원은 나를 다시 집에 내려놓고 3시에 다시 오겠다며 가버렸다. 어린 동생들은 트렁크를 열고 북조선에서는 처음 보는 고급스러운 옷과 각종 필수품을 보고 마냥 부러워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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