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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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스물 세 번째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11-28 10:16


현관에 나가니 검정색 벤즈 차가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운전수가 내 짐을 받아 차에 실어 주었다. 차에는 기다리던 정 지도원이 ‘사로청 이동증’, ‘식량 림시 정지 증명서’. ‘도서 반환증’, ‘납부금 완납을 증명하는 경리증’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차가 떠나려고 움직일 때 집에도 가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닌가 속으로 걱정하며 끙끙대다가 혼자말처럼 ‘담임선생에게 인사도 못하고......’ 하고 중얼거렸다. 정지도원은,



“참 좋은 생각이야, 그래, 선생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지.”라며 차를 1학부 건물인 제2호 청사 현관에 갖다댔다.



당시 담임선생은 최순이라는 이름을 쓰는 일본 여자였다. 이 녀자는 1960년대에 조선인 남편을 따라 귀국하여 평양 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정 지도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김현희 동무가 당에 가게 되여 앞으로 학교에 못 다니게 되였습니다. 그동안 잘 가르쳐 주어서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맞게 되였습니다. 김현희 동무도 선생의 수고를 감사하게 느껴 먼저 인사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정 지도원의 말에 최순 선생은 내 손을 잡고 참 잘된 일이라고 축하를 보냈다.



“김현희 동무는 작문도 잘 하고 학교 생활에 성실하여 우리 학급에서 가장 모범적인 학생입니다.”

선생은 정 지도원에게 나를 극구 칭찬하고 다시 나에게,



“가서 건강하고 잘 하세요.” 라며 격려해 주었다.



우리 학급 아이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날 우리 학급은 과수농장에 로력동원을 나가고 교실에 없었다. 밖에까지 나와 전송하는 최순 선생을 뒤로 두고 정든 학교를 떠났다.



차가 학교 문을 벗어났는데도 정 지도원에게서는 우리집에 간다는 이야기가 없어 나는 머뭇머뭇하다가 용기를 내었다.



“부모님에게 인사도 않고 떠나는 겁니까?” 라고 물으며 정 지도원의 눈치를 살폈다. 정 지도원이 나에게서 그 말이 나올줄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응, 지금 집으로 가는 중이오. 부모님에게 인사도 않고 떠나서야 되겠소.”하고 명확히 대답해 나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차가 하신동 외교부 아빠트 우리집 현관 앞에 멎었다. 북조선에서는 일반 인민들이 이런 고급 승용차를 타는 것은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대단하게 생각했다. 나 역시 이때 생전 처음으로 승용차를 타보는 것이였다. 승용차가 지나가면 차에 높은 사람이 탔다고 생각하여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소년단 경례를 붙였다. 승용차가 집 앞 현관에 멎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나타난 고급 승용차를 보려고 창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내가 내리자 더 얼굴을 내밀고 자세히 살피려 했다.



어머니는 내가 나이 든 낯선 남자 손님을 데리고 들이 닥치자 들어오라는 소리도 못하고 정 지도원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어색해진 정 지도원이 먼저,



“중앙당에서 나왔습니다. 들어가서 어머니와 조용히 담화할 게 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집에 계십니까?” 라고 입을 떼였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마루에 나와 있던 현수, 현옥, 범수에게 다른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눈짓하고 정 지도원을 안방으로 안내했다. 정 지도원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우리 현희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급히 물었다.



정 지도원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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