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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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성 심화조에 의한 대학살 사건 8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청취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우리는 김정일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사회안전성 심화조가, 역시 김정일의 묵인아래 국가안전보위와 보위사령부에 의하여 처참하게 해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회안전성 심화조에 의한 대학살 사건’, 마지막 시간인 오늘은 심화조가 인민들에게 끼친 피해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회안전성 심화조가 저지른 인간 살육전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치렬한 싸움이였습니다. 1997년 말부터 2000년 말까지 심화조에 의해 숙청당한 간부들과 그 가족들이 무려 2만 5천여 명에 달합니다. 본인은 거의 죽음을 면치 못하였고 그 가족과 친척들은 정치범수용소나 산간오지로 추방되였습니다. 이들을 숙청하는데 힘을 실어주었던 김정일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루명을 자기가 직접 벗겨준다고 떠들면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던 심화조 사건 피해자들을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인생을 다시 찾는 격정의 순간을 주민들에게 실화로 보여주어 마치도 자기가 통이 큰 지도자, 광폭정치의 대가인 것처럼 선전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김정일은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무대를 설치해 강연회를 조직하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여 있던 심화조 사건 피해자들의 석방선언과 가족상봉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의도와는 달리 이 행사는 오히려 김정일의 독재를 온 세상에 고발하는 성토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였던 심화조 사건 피해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시내까지 실려왔습니다. 트럭에서 내린 초췌한 몰골의 사람들은 무대를 불안한 눈길로 쳐다봤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무대에 올라 큰 소리로 최고사령관 김정일의 명의로 된 글을 랑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남1 : 지금부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은정깊은 사랑과 배려를 전달하겠습니다.



무대에서 랑독되고 있는 것은 석방명령이였지만 이것이 사형판결처럼 들렸는지 심화조 사건 피해자들은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며 여기저기서 애원하고 통곡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인민들은 그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됐으며 정치범수용소의 실체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김정일의 석방명령이 발표된 후 가족상봉모임이 진행됐습니다. 정치범들과 그 가족들은 각각 다른 정치범수용소에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가족상봉모임이 시작되자 상봉장은 곧 제 아들과 안해를 찾으며 울부짖는 소리로 뒤덮였고 이를 지켜본 인민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남2 : 철남아! 철남아!

남3 : 아버지!

여1 : 철남 아버지!

남2 : 미안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어떤 정치범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재처벌을 한다고 생각했던지 “제발 나만 잡아가라”고 절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전국 곳곳에서 정치범석방과 가족상봉모임이 벌어졌는데 원래 3차까지 예정된 행사는 곧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김정일의 광폭정치가 부각되기 보단 심화조 사건에 대한 인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게 번지는 역효과가 생겼기 때문이였습니다.



심화조 피해자들은 정치범수용소 생활로 인해 정신병과 고치지 못할 중병을 얻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였습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그들에게 석방은 또 다른 고통과 울분의 련속이였습니다. 정치범수용소에 가게된 문제로 사랑하는 안해와 남편과 리혼당한 사람들은 이미 다른 남자, 다른 녀자에게 재가한 사람들을 눈물로 그리워해야 했고, 어떤 녀자는 아이를 빼앗기던 날의 공포와 아픔을 잊지 못해 남편을 만나자마자 저주하며 주먹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그들은 재산과 집까지 잃었고 직장까지 잃었습니다. 김정일은 원래 있던 직장, 직위, 집을 그대로 주라고 하였지만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당한 사람들의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등 원상태로 복구하기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때문에 당에서는 일단 심화조 피해자들에게 임시로 집단거처를 마련해주고 쌀과 기름을 공급해주는 특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이들에게 이같은 지원이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심화조 사건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서관히 간첩 사건이 그 출발점이였습니다. 김정일의 권력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시작된 심화조 사건은, 김정일의 지지와 특권허용을 리용하여 당내에 자신의 권력기반을 닦으려 했던 장성택과, 이 장성택을 등에 업고 사법기관의 수뇌로 부상하려 했던 채문덕의 야심까지 겹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이렇듯 몇몇 사람의 야심과 계획에 의해 수만 명이 희생당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 김정일 독재체제의 본질입니다. 죄가 없이도 강제로 끌려가고 아무런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무참히 고문을 당해야 하는 체제, 맞아 죽어도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반인민적인 체제, 김정일만 살판치는 우리나라의 제도와 환경이 결국 2만 5천여 명이라는 희생자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응당 책임져야 할 김정일은, 자기는 전혀 책임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한 구세주처럼 광폭정치요, 사랑과 믿음의 정치요 하며 대대적인 선전을 벌였던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난의 행군이라는 재앙을 불러들여 수백만 인민들을 굶겨죽였던 김정일, 그는 심화조 사건을 통해 그 기만의 정체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현재 극심한 민심이반을 겪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폭력의 방법으로 인민들의 반항심을 누르고 있지만 민심은 이미 김정일과 등을 돌린지 오래입니다. 이 모든 것은 폭정과 무능으로 조선 인민들을 배반해온 김정일이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에 의한 대학살 사건>, 마지막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 자료:‘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심화조 사건’의 진상’(신동아. 200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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